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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타인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며 복음을 사는 ‘우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3일 1만여 명이 운집한 니코시아 ‘GSP 스타디움’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통해 일치하며 함께 걷고 대화하라고 권고했다. 교황은 복음 선포가 개종 강요를 뜻하는 게 아니라 증거하는 문제라며, 다른 이를 심판하는 도덕주의가 아니라 자비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미사 말미에는 키프로스 교회에 인사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다양하고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이 모든 순례자들의 여정을 풍요롭게 하는 성지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느낍니다. 이는 저에게도 유익합니다.”

Tiziana Campisi / 번역 이창욱

“낫기 위해 예수님께 다가가십시오.” “함께 상처를 가져가십시오.” “기뻐하며 복음을 선포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복음에서 눈먼 두 사람을 고쳐주신 사화를 오늘날의 현실에 빗대어 풀이하며 이 같이 권고했다. 이날 미사는 교황의 키프로스 순방 이튿날인 12월 3일 판치프리안 짐나스틱 어소시에이션 스타디움(Pancyprian Gymnastic Association Stadium, 이하 GSP 스타디움)에서 거행됐다. 교황은 소박한 나무 목장(牧杖, pastorale)을 들고 햇살 가득한 GSP 스타디움으로 입장했다. 중앙에는 노란 꽃으로 장식된 길이 제대를 향해 나 있었다. 제대는 약 1만 명의 신자들이 몰린 관중석과 마주하고 있었다. 신자들은 제단 중앙에 걸린 큰 십자가와 그 양쪽에 그려진 사도 순방의 상징들, 곧 사도 바르나바의 모습과 키프로스 섬의 지도 형상을 볼 수 있었다.

교황이 미사를 봉헌하는 제대
교황이 미사를 봉헌하는 제대

교황은 강론에서 우선 복음의 두 주인공은 “눈이 멀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보았다”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심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주님을 믿고 “자신들의 눈을 밝히기 위해 그분을 따랐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들이 각자 자기 자신의 “눈멂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하나 되어 함께” 주님께 부르짖었다고 강조하며, 바로 이 모습이야말로 “그리스도인 삶의 웅변적인 표징이자 교회 정신의 독특한 특성”이라고 말했다. “마음을 병들게 하는 자기만족이나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우리’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교황은 “우리는 어둠을 홀로 마주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의 내적 눈멂을 홀로 짊어지고 간다면 우리는 넘어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서로의 곁에 나란히 서서 상처를 나누고 함께 우리 앞에 있는 길을 마주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와 사회에서 우리 앞에 닥친 도전과 우리의 내적 어둠에 직면한 우리는 형제애를 새롭게 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계속 분열된 채로 남아 있다면, 각자가 그저 자기 자신만 생각하거나 자신의 집단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함께 뭉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함께 걷거나 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눈먼 상태에서 완전히 나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황은 우리가 함께 상처를 짊어질 때, 함께 문제를 마주할 때, 서로의 말을 경청하며 말할 때 치유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공동체로 사는 것, 공동체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은총입니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항상 일치하고 기쁨으로 함께 나아가라”고 초대했다.

마음의 눈멂과 예수님께서 주신 안식

교황은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도 눈멂이 있다”며 “눈먼 두 사람처럼 우리도 종종 삶의 어둠에 젖은 행려자들”이기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교황은 우리가 많은 경우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고, 자신의 어둠을 안고 홀로 지내며, 자신을 애처롭게 여기고, 슬픔이라는 나쁜 동반자를 받아들이는 데 동의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황은 “예수님께서는 의사”라고 정의하는 한편, 그분만이 우리에게 사랑과 온기를 주시고 마음을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며 “모든 사람을 비추시는 참빛”(요한 1,9 참조)이시라고 말했다.

미사를 봉헌하는 교황
미사를 봉헌하는 교황

죄는 현실을 왜곡해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교황은 복음의 두 주인공이 “자신들의 고통과 형제적 우애를 나누는 데 있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 각자는 죄의 결과로 어떤 면에서 눈이 멀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다른 이들을 형제자매로 ‘보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죄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는 현실을 왜곡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폭군으로, 다른 이들을 골칫거리로 보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낙담과 괴로움에 빠트리기 위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하려고 모든 것을 거짓되게 하는 유혹자의 소행입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적인 표지

끝으로 교황은 복음의 눈먼 두 사람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치유에 대한 흥분과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얻은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기쁨이 그들로 하여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당부를 어기고 자신들의 치유 소식을 널리 전하게 부추겼다고 말했다. 교황은 여기서 눈먼 두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적인 표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주는’(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1항 참조) 복음의 억누를 수 없는 기쁨입니다. 복음의 기쁨은 개인적이고 우울하며 슬픔에 잠긴 신앙의 위험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고, 우리로 하여금 역동적으로 증거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교황은 GSP 스타디움에 모인 신자들에게서도 기쁨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보게 되어 매우 좋고, 여러분이 기쁨으로 복음을 자유롭게 선포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이는 개종 강요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부디 절대로 개종을 강요하려 들지 마십시오. 개종 강요가 아니라, 증거하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을 심판하는 도덕주의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포용하는 자비에 대한 것입니다. 겉으로만 경배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길을 계속 나아가도록 격려합니다. 복음의 눈먼 두 사람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과의 만남을 새롭게 하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두려움 없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합시다!”

일상생활의 메마른 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립시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 “‘깨우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빛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온유한 사랑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을 밝히는 위로의 말과 행동으로 우리 형제자매들의 눈멂을 어루만질 수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일상생활의 메마른 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고통과 가난의 황무지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황은 강론을 마무리하며 예수님께서 키프로스의 거리를 지나가시면서 상처와 병을 낫게 하시고 형제애를 새롭게 하신다고 확신했다. 아울러 신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오소서, 주 예수님”을 세 번 부르며 기도하자고 초대했다.

키프로스의 신자들에게 건넨 애정 어린 인사

교황은 미사 말미에 자신에게 보여준 사랑과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키프로스 교회에 인사를 건넸다.

“저는 이곳 키프로스에서 다양하고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이 모든 순례자들의 여정을 풍요롭게 하는 성지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느낍니다. 이는 저에게도 유익합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열린 마음과 희망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가장 궁핍한 이들과 이러한 지평을 함께 나누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만나는 것도 무척 고무적입니다.”

그런 다음 교황은 이날 오후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함께 만날 이주민들을 언급했다. 이어 제대를 떠나기 전 성모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제대 옆에 모셔진 마리아 이콘 앞에서 동정녀께 경의를 표했다.

수석 랍비와 키프로스 교도소장과의 만남

교황청 공보실은 교황이 교황대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키프로스의 수석 랍비 아리 지브 라스킨(Arie Zeev Raskin)과 짧게 만났다며, 그를 통해 키프로스 유다인 공동체에 인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황은 키프로스섬의 교도소장에게도 인사했다. 교도소장은 수감자들의 선물과 인사를 교황에게 전했다. 이 수감자들 중에는 서류 미비로 수감된 이주민들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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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12월 2021, 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