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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서 우리를 성인으로 만드는 겸손이 드러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하느님께서 요란하지 않게 일상생활과 모든 사람의 삶의 평범함 속에서 역사하신다고 강조했다. 또한 마리아의 겸손이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변 사람에게 온전히 향할 수 있게 하는 내적 자유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삼종기도를 마친 후 이틀 전에 끝난 키프로스·그리스 해외 사도 순방을 떠올리며 무관심에 굴복하지 말라고 초대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전례의 복음은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받은 곳, 나자렛에 있는 마리아의 집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루카 1,26-38 참조). 한 사람이 다른 곳보다 자신을 더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곳은 바로 집 안입니다. 그 가정의 친밀함 속에서 복음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을 선물합니다. 바로 마리아 마음의 아름다움입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라고 부릅니다.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은 성모님께서 악이 없으시고, 죄가 없으시며, 티 없으시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마리아가 이 말에 “몹시 당황했다”(루카 1,29 참조)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놀랐을 뿐만 아니라 당황했습니다. 거창한 인사, 존경, 칭찬을 받는 것은 때때로 교만과 오만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장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거나, 아부받기를 좋아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루카 20,46 참조). 반면, 마리아는 크게 들뜨지 않고 당황합니다. 좋아하기보다는 놀라워합니다. 천사의 인사는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리아는 내면적으로 자신을 작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작음, 이 겸손이 하느님의 시선을 끕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자렛의 집 안에서 놀라운 순간을 봅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최고의 찬사를 받고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해당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특권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자신의 공로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만하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겸손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완전히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로 향합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는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지 않고,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도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의 이 완전함이 천사에 의해 그녀의 집 안에서 선포되었음을 기억합시다. 나자렛의 중앙광장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가장 겸손함 안에서 말입니다. 나자렛의 작은 집 안에서는 이제까지 그 어떤 피조물도 가지지 못했던 요동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는 우리를 위한 특별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이 기적을 행하시기 위해서는 거창한 수단이나 우리의 고상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겸손과 우리의 시선이 당신께 열려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작고 보잘것없는 집 안에서의 선포를 통해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일상의 삶 안에서, 곧 가정, 일터, 일상의 삶의 터전에서 우리와 함께 위대한 일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역사의 위대한 사건보다 일상에서 더 많이 활동하길 선호합니다.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를 믿는가? 아니면 성덕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위한 유토피아일 뿐이고, 일상의 평범한 삶과 양립할 수 없는 경건한 환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성모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복음과 삶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청합시다. 진정한 의미의 성덕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를 불타오르게 해주시길 청합시다. 성덕이란 작은 상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매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성모님처럼 우리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져 하느님과 우리가 만나는 이웃을 바라보며 ‘겸손하고 기쁘게’ 사는 문제입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성덕을 엮어낼 수 있는 좋은 옷감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이나 무언가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성모님께서 “자애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에게 도움을 청한 그 누구도 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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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12월 2021, 14:40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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