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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전쟁으로 죽은 이들의 무덤이 평화를 부르짖습니다. 무기제조를 멈추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을 맞아 로마 소재 프랑스 군인묘지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군인들의 무덤에 헌화했다. 교황은 “무기산업으로 경제가 강화되지 않도록 싸우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전쟁은 조국의 아들들을 삼켜버린다”고 말했다. 바티칸으로 돌아온 교황은 역대 교황들의 무덤을 참배하며 기도를 바쳤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형제자매 여러분, 그만하십시오! 무기제조업체는 당장 멈추십시오! (…) 이 무덤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르짖고 있습니다. 평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는 하나의 속삭임이었지만, 로마에 위치한 프랑스 군인묘지의 삼나무와 올리브나무 사이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이 기억과 역사의 장소에서 올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미사를 거행하기로 했다. 교황은 전날 모든 성인 대축일 삼종기도의 말미에 예고했던 것처럼, 특히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했다. 양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지역적으로” 치르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였다.

무덤에 올려진 흰 장미꽃

교황은 고개를 숙인 채 푸른 잔디가 양쪽으로 깔린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전사한 프랑스 군인들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일한 모양의 비석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우뚝 선 대리석 십자가에는 “프랑스를 위해 죽다(Mort pour la France)”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몬테 마리오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역사적인 장소는 대다수의 로마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마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차량으로 이동한 교황은 “1943-1944년 이탈리아 전쟁 / 프랑스 군인묘지”라고 새겨진 입구를 지나 예정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교황은 홀로 침묵 중에 기도하며 비석 사이를 걸었다. 묘지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다가 어떤 무덤 위에 흰 장미를 올려놓은 다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잠시 기도했다. 이 “여정”을 마친 후, 교황은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신자들과 공동집전 사제들에게 인사하고, 이어 제의를 입었다. 성가대가 성가를 부르는 동안 봄볕 같은 태양빛을 가리는 하얀 천막 아래의 제대로 향했다. 독서는 프랑스어로 봉독됐고, 성가는 이탈리아어로 울려 퍼졌다. 야외에서 거행된 이 미사에는 여러 신자들이 참례했다.

묘비 위에 올려놓을 흰 장미를 들고 있는 교황
묘비 위에 올려놓을 흰 장미를 들고 있는 교황

모두가 여정 중입니다

매년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미사와 같이 이번에도 교황은 원고 없이 즉흥적으로 강론했다. 교황은 북부 이탈리아의 한 마을 묘지 입구에 새겨진 글귀를 떠올리며 운을 뗐다. “지나가는 그대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의 발걸음을, 마지막 발걸음을 생각하라.” 교황을 깊이 감동시킨 이 초대 말씀은 지난 2016년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에서 교황이 이미 언급한 바 있으며, 이날 모든 신자들에게 “삶은 하나의 여정이고 우리 모두 이 여정을 걷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제시됐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인가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여정입니다. 그냥 산책이 아니라, 여정입니다.”

교황은 우리가 매일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 앞에서, 많은 어려운 상황 앞에서, 그리고 많은 묘지 앞에서”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딜 겁니다. 누군가 제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너무 비참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순히 돌아다니면서가 아니라 여정 중에서 그 마지막 발걸음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미로가 아니라, 삶의 여정에서 말입니다.” 

전쟁은 희생자들을 집어삼킵니다

교황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무덤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두 번째 생각을 표현했다. “이 선량한 사람들은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국을 지키고, 가치를 지키고, 이상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가끔은 슬프고 한탄스러운 정치적 상황을 지키기 위해 부름받았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들은 희생자들입니다. 조국의 아들들을 집어삼키는 전쟁의 희생자들입니다.”

프랑스 군인묘지에서 미사를 봉헌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프랑스 군인묘지에서 미사를 봉헌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이름을 아십니다

교황은 매년 11월 2일마다 방문했던 군인묘지를 떠올렸다. 2017년에는 안치오 군인묘지를, 2014년에는 레디풀리아 군인묘지를 방문했다. 아울러 교황은 지난 1914년 피아베 강 전투에서 사망한 이들과 실종자들을 추모했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 묻혀있습니다.” 이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도 추모했다. “그 상륙작전에서 무려 4만 명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의 죽음을 개의치 않습니다. (…)” 교황은 다시금 프랑스 군인묘지의 비석들을 언급하며 어느 무덤 앞에 쓰인 글귀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곧, ‘무명의 용사(Inconnu), 프랑스를 위해 죽다’이다.

교황은 군인묘지에 있는 다른 수많은 무덤처럼 이러한 익명의 무덤을 가리켜 “이름조차 없다”며 말을 이어갔다.

“하느님의 마음에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무덤은 전쟁의 비극입니다. 저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조국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선의로 세상을 떠난 이들 모두가 주님과 함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여정 중에 있는 우리는, 전쟁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충분히 싸우고 있습니까? 무기산업으로 국가들의 경제가 강화되지 않도록 싸우고 있습니까?”

“무명의 용사”라고 쓰인 묘비
“무명의 용사”라고 쓰인 묘비

무덤들, 평화의 메시지

“오늘 강론은 무덤을 둘러보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어떤 무덤은 이름이 있고, 어떤 무덤은 이름이 없다. 하지만 모든 무덤은 “평화의 메시지”다. 땅에서 힘차게 솟아나는 부르짖음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만하십시오! 무기제조업체는 당장 멈추십시오!”

“이 두 가지 생각을 여러분에게 남깁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론을 마무리했다. “‘지나가는 그대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의 발걸음을, 마지막 발걸음을 생각하라.’ 평화 안에 머물기를,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를, 모든 것이 평화롭기를 빕니다. 두 번째 생각은 이것입니다. 이 무덤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르짖고 있습니다. 평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두 가지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심고 간직하도록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역대 교황들의 무덤 앞에서 기도

미사 후 바티칸으로 돌아온 교황은 역대 교황들의 무덤이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위치한 바티칸 지하묘지로 향했다. 교황은 거기서도 전임 교황들을 기억하며 잠시 기도했다.

역대 교황들의 무덤 앞에서 기도
역대 교황들의 무덤 앞에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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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1월 2021,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