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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온 요셉은 가장 본질적인 시각을 교회에 가르쳐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17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마리아의 배필이자 예수님의 지상 아버지인 요셉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을 새롭게 시작했다. 교황은 베들레헴과 나자렛이 선택된 까닭은 하느님께서 “변방과 가장자리”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성 요셉께 바치는 새로운 기도를 소개했다. “세상이 쓰고 버린 것을 더 좋아하게 도와주소서.”

번역 김호열 신부

성 요셉에 대한 교리 교육

1. 성 요셉과 그가 살았던 환경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복자 비오 9세 교황님은 지난 1870년 12월 8일 성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성 요셉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Patris corde)를 통해 요셉 성인의 몇 가지 모습을 살폈습니다. 요즘처럼 다양한 방면에서 세계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요셉 성인은 우리를 위한 버팀목이자 위로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성 요셉에 대한 교리 교육 여정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결정한 이유입니다. 이번 교리 교육 여정을 통해 요셉 성인의 모범과 증거가 우리를 밝혀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데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성 요셉에 대해 살펴봅시다.

성경에는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10명이 넘습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야곱과 라헬의 아들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종의 신분에서 이집트의 파라오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된 요셉입니다(창세 37-50장 참조). 요셉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더해주신다, 하느님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염원이자 축복이며, 특히 자녀들의 다산과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바로 이 이름이 나자렛 요셉의 성품의 본질적인 측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는 하느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그에게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그의 모든 행동은 하느님께서 “자라게 하신다”, 하느님께서 “늘려주신다”, 하느님께서 “더해주신다”는 확신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시는 데 있어서 미리 준비하신다는 확신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자렛의 요셉은 이집트의 요셉과 매우 흡사합니다. 

심지어 요셉에 대한 주요 지리적 언급인 베들레헴과 나자렛도 요셉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라는 뜻인 ‘베이트 레헴(Beth Lechem)’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 지역에 정착한 에프라임 지파의 이름 때문에 에프라타(Efrata)라고도 불렸습니다. 반면, 아랍어로 베들레헴은 “고기의 집”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 지역에서 많은 양과 염소를 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그 사건의 첫 번째 증인들이 목자들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루카 2,8-20 참조). 예수님의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빵과 고기(살)에 대한 이러한 암시는 성찬례의 신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이라는 것입니다(요한 6,51 참조). 그분께서는 당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요한 6,54).

*역주: 히브리어로 베들레헴은 ‘빵의 집’을 의미한다(베이트Beth ‘집’ + 레헴Lechem ‘빵’). 이곳은 또한 에프라임 지파가 정착한 지역이라 에프라타(Efrata)라고 불리는데, 에프라타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룻 4,11; 미카 5,1 참조) ‘열매를 맺다’란 뜻이며 풍요로움과 비옥함을 의미한다. 아랍어로는 ‘베이트 라흐마(베이트Beth ‘집’ + 라흐마Lechem ‘고기’)’라고 발음한다. 

베들레헴은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성경에 여러 번 언급됩니다. 작지만 경이로운 책인 룻기에 서술된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도 베들레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룻은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를 낳았습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서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인 요셉이 나왔습니다. 미카 예언자는 베들레헴에 관한 위대한 일을 예언했습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예언을 받아들이면서 이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확실히 성취된다며 예수님의 역사와 연관시킵니다.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당신 육화의 장소로 예루살렘을 택하지 않으시고, 사건사고의 잡음과 시대의 권력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의 두 마을, 베들레헴과 나자렛을 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주님께서 사랑하신 도성이자(이사 62,1-12 참조) “거룩한 도성”(다니 3,28)이며, 하느님께서 당신이 거처하시려고 선택하신 곳(즈카 3,2; 시편 132,13 참조)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곳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수석 사제들과 백성들의 원로들이 살고 있었습니다(루카 2,46; 마태 15,1; 마르 3,22; 요한 1,19; 마태 26,3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베들레헴과 나자렛을 선택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변방과 가장자리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하들 (…) 을 거느리신 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신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변방에서 태어나시고 요셉과 같은 목수로 일하시면서 30년 동안 그곳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변방과 가장자리를 선호하십니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복음 그리고 지리적이며 실존적인 변방에서 계속 나타나시는 하느님의 사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변방에서, 우리 영혼의 변방에서, 감정의 변방에서, 아마도 우리가 부끄럽게 여기는 감정 안에서 남몰래 행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리적이고 실존적인 변방에서 지속적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죄인들을 만나러 가시며, 그들의 집에 들어가 대화하시고, 그들이 회심하도록 부르십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율법학자들에게 책망을 받으십니다. “아, 이 선생을 보세요. 이 양반을 보세요. 죄인들과 함께 먹고 어울리면서 스스로를 더럽히고 있군요.” 예수님께서는 악을 행하지 않으셨지만 악행으로 피해를 입은 병자들과 굶주린 이들, 가난한 이들과 꼴찌들을 찾아 나서십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변방으로 가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많은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변방, 우리 영혼의 변방, 우리 사회와 도시와 가정의 변방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부끄러워하며 보여주지 않으려고 감추는 우리의 약간 어두운 부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때 당시의 사회는 지금 우리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중심과 변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기쁜 소식(복음)을 변방으로부터 전하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젊은 약혼자와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을 신뢰한 나자렛의 목수 요셉은 세상이 고의로 경시하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고 교회를 일깨웁니다. 오늘날 요셉 성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세상이 칭송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지 마십시오. 세상이 원하지 않는 구석진 곳을 보고, 어두운 곳을 보고, 변방을 보십시오.” 성인은 다른 이들이 쓰고 버리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고 우리 각자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 성인은 진정으로 본질적인 것에 대한 스승입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지만, 발견되고 가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끈기 있는 식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떠올려 줍니다. 가치 있는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온 교회가 이러한 시각, 이러한 식별의 역량, 본질적인 것을 평가하는 이러한 역량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성 요셉께 전구를 청합시다. 베들레헴에서, 나자렛에서, 다시 시작합시다. 

오늘 저는 세상에서 가장 쉽게 잊히는 지리적 변방과 실존적 변방의 상황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증거자와 보호자를 성 요셉에게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직접 쓴” 다음의 기도로 성 요셉께 간청합시다. 

성 요셉이시여, 

당신께서는 항상 하느님을 신뢰하셨고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선택하셨으니 

저희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계획에 의지하도록 저희를 가르치소서.

변방에서 오신 분이시여,

저희의 시선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세상이 쓰고 버린 것

세상이 소외시킨 것을 

더 좋아하게 도와주소서.

혼자라고 느끼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생명과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이들을 살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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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1월 202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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