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차 세계 젊은이의 날 강론 “젊은이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꿈을 꾸고 시류를 거스르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인 11월 21일 제36차 세계 젊은이의 날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한가운데에서 우뚝 서고”, “지름길을 걷지 않고, 거짓 없이” 살며, “시류를 거스르는” 용기를 내고, “폐허 한가운데에서 건설자”가 되라고 권고했다.

번역 이창욱

우리가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이끌어낸 두 이미지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 다가가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요한 묵시록에서 발췌한 대목으로, 앞서 제1독서인 다니엘 예언서에 표현된 모습입니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묵시 1,7; 다니 7,13 참조).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주님이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복음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 앞에 서시고, 그에게 “내가 임금”(요한 18,37 참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오는 2023년 리스본 세계청년대회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들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첫 번째 이미지에 관해 잠시 살펴봅시다.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끝나는 날에 영광스럽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미지입니다. 또한 우리의 실존에 관한 마지막 말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구름 타고 달리시는”(시편 68,5) 분이시고, 구름 위에 그분의 권능이 있다(시편 68,34-35 참조)고 성경은 말합니다. 곧, 그분은 주님이십니다. 높은 데서 오시어 결코 저물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지나가는 것에 맞서 끝까지 남아 계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신뢰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희망에 대한 이 예언이 우리의 밤을 밝혀줍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오고 계시고, 하느님께서 존재하시고,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시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역사를 당신 자신과 선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안심시키시려고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나는 너희의 삶이 어두운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 너희를 홀로 두지 않는다.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 나는 구름을 걷고 맑게 갠 하늘을 비추러 왔다.”     

하지만 다니엘 예언자는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다니 7,13)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보았다고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밤의 환시 속에서,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밤에 오십니다. 우리의 삶에 짙게 깔리는 어두운 구름 사이로 오십니다. 우리 각자는 이러한 순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밤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하며, 어둠 한가운데에서 주님을 보기 위해 우리의 시선을 들어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밤의 환시 속에서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무슨 말이냐고요? 어둠 속에서도 눈을 밝게 뜨라는 것, 많은 경우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고 우리 주변에서 보게 되는 어둠 한가운데에서 빛을 찾는 것을 결코 멈추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눈을 땅에서 위로 들어 올리십시오. 이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갇혀 그 상태로 남아 있으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는 상황은 위험합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불평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눈을 들고 일어나십시오!’ 이는 초대입니다. ‘눈을 들고 일어나십시오!’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초대입니다. 저는 이 초대를 올해 세계 젊은이의 날의 여정에 동행할 젊은이 여러분에게 보내는 ‘담화’에서 되풀이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이 임무는 매우 어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임무입니다. 곧,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한가운데에서 우뚝 서는 것, 밤의 환시 속에서 빛을 볼 줄 아는 파수꾼이 되는 것, 폐허 한가운데에서 건설자가 되는 것 – 오늘날 이 세상에는 폐허가 많습니다. 너무도 많습니다!  – , 꿈꾸는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이 중요합니다. 꿈을 꿀 수 있는 역량이 없는 젊은이, 그 가엾은 친구는 때 이른 노인이 되고 맙니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꿈을 꾸는 이들이 다음과 같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곧, 어두운 밤에 잠긴 채로 머물지 않고, 내일을 알리는 희망의 빛을 밝힙니다. 꿈을 꾸십시오. 여러분은 민첩하게 행동하고 용감하게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여러분이 꿈을 꿀 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인가요? 젊은이들이 꿈을 꿀 때는 가끔 소란스럽습니다. (...)” 시끄럽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내는 소음은 여러분의 꿈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인생의 꿈으로 삼고, 기쁨으로 그리고 전염성 강한 열정으로 그분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여러분이 밤 속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여러분이 용기 내어 꿈을 펼쳐 나가고, 인생의 밤 속에서도 빛을 믿고, 우리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그 모든 시간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형제애의 꿈을 키우고, 피조물의 상처를 돌보고, 가장 약한 이들의 존엄을 위해 싸우고, 연대와 나눔의 정신을 널리 전하는 그 모든 시간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특히, 현재의 이득만을 따지고, 원대한 이상을 숨막히게 질식시키려 드는 세상에서, 이런 세상에서 꿈꿀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지 않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무감각하게 살거나 잠든 채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생생하게 꿈을 꿔야 합니다. 이는 우리 어른들을 도와주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꿈을 꿀 필요가 있고, 열정을 필요로 하며, 젊은이들의 향기를 필요로 합니다! 언제나 젊으신 하느님의 증거자들이 되기 위해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다른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꿈 가운데 많은 것이 복음에 나오는 꿈과 일치합니다. 형제애, 연대, 정의, 평화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꿈과 동일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에 여러분의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꿈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마르티니(Martini) 추기경님은 “성령의 놀라우심에 우리 마음을 열어두는 꿈꾸는 이들”이 교회와 사회에 도움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예루살렘 밤의 대화: 신앙의 위기에 관해』(Conversazioni notturne a Gerusalemme. Sul rischio della fede), p. 61 참조). 성령의 놀라우심에 우리 마음을 열어두는 꿈꾸는 이들.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꿈꾸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길 바랍니다!

이제 두 번째 이미지로 넘어갑시다. 빌라도에게 “내가 임금”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결단, 그분의 용기, 그분의 최고의 자유가 인상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시어 총독관저로 끌려가셨고, 당신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분께서 스스로를 변호할 자연적인 권리를 누리실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사태를 수습하려고” 타협점을 찾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으시고, 당신의 의도를 꾸미지도 않으시며, 구제의 가능성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빌라도에게서 유리한 점을 취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진리에서 나온 용기로 “내가 임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삶에 책임을 지십니다. 곧, ‘나는 사명을 위해 왔고 아버지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끝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 예수님께서는 이런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이중성 없이 오셨습니다. 당신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와 다르다는 것,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높이시려 남을 짓밟으며 다스리지 않으신다는 것, 하느님께서 군대나 무력으로 다스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당신의 삶으로 선포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내가 임금”이지만, 그러한 사랑의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이들의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예수님의 자유가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예수님의 자유가 우리 내면을 울려 퍼지게 하고, 우리를 뒤흔들며, 우리 안에 진리의 용기를 일깨우게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지금 여기, 빌라도의 자리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눈을 바라본다면, 나는 무엇을 부끄러워할 것인가? 예수님의 진리 앞에서, 바로 예수님이신 진리 앞에서, 무엇이 굳건히 서지 못하게 하는 나의 거짓이며, 무엇이 주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시는 나의 이중성인가? 우리 각자 그런 결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를 멀리하기 위해 이런 이중적인 태도, 이런 타협, 이런 “사태를 수습하려는”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진리를 일구기 위해서는 예수님 앞에 설 필요가 있습니다. 내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현혹되지만 이내 사그라지는 한순간의 유행과 소비지상주의의 화려함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매혹되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주도하고 “삶을 꼭 붙들기” 위해, 삶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자유 안에서 ‘시류를 거스르는’ 용기를 찾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입니다. 곧, 시류를 거스르는 것, 시류에 역행하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피해자나 음모론자들과 같은 사람들 – 그들은 매일 그러한 유혹을 받습니다 – 을 거슬러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을 찾아 헤매는, 엄격하고 폐쇄적이며 이기적인 자아(ego)의 건강하지 못한 시류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는 시류를 거슬러 가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오직 겸손하고 온유한 선의 힘을 통해 악을 거슬러 가도록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지름길을 걷지 않고, 거짓 없이, 이중성 없이 말입니다. 너무나 많은 악에 상처 입은 우리 세상은 더 이상 모호한 타협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바다의 파도처럼 –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디든지,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사람들이나, 무엇이 가장 편리한지 냄새를 맡은 다음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줄타기 곡예사들”입니다. 이 같이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 오히려 곡예사처럼 보입니다. 줄타기 곡예사들은 항상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생명을 담보로 삼지 않으려고, 진지하게 인생에 투신하지 않으려고 피할 궁리만 합니다. 부디 여러분은 그런 줄타기 곡예사와 같은 젊은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여러분은 자유롭고 진실한 이들이 되고, 사회의 비판적인 양심이 되십시오.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의 비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환경 오염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비판이 필요합니다! 자유롭게 비판하십시오.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꿈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삶은 이 세상의 논리에 사로잡힌 노예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예수님과 함께 정의, 사랑, 평화를 통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여러분 각자가 “예수님과 함께 나도 임금”이라고 말하는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 ‘저도 임금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연민, 하느님의 온유한 사랑의 살아있는 표징입니다.’ ‘저는 복음의 빛으로 눈이 멀어 밤의 환시 속에서 희망을 통해 바라봅니다.’ ‘저는 넘어질 때마다, 예수님 안에서 계속 싸우고 희망할 용기, 다시 꿈을 꿀 용기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인생의 모든 단계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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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1월 2021, 1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