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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치유는 경청에서 시작합니다”

“수많은 할 말과 할 일에 도취되어 서두르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에게 말하는 이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마르코 복음이 들려주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치유사화를 묵상하며 이 같이 말했다. 교황은 삼종기도 말미에 아프간 국민, 허리케인의 피해를 입은 미국 국민을 기억하는 한편, 다음주로 예정된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순방을 언급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이 사화에서 놀라운 점은 주님께서 이 경이로운 표징을 이루시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신 다음,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시고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마르 7,33-34 참조). 중풍병자나 나병환자 등 똑같이 중병을 앓는 이들이 나오는 다른 치유사화에선 예수님께서 많은 동작을 취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그저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지금 이 모든 행동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마르 7,32 참조)? 왜 이런 행동을 하실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상황이 특별한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것은 질병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상징은 우리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귀먹음’입니다. 그 사람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의 원인을 다시 고쳐주시기 위해, 당신 손가락을 먼저 그의 두 귀에 넣으셨고, 그런 다음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귀를 만지시는 것이 첫 번째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수님께 우리 내면을 만지시고 낫게 해주시길 청할 수 있는 내적 귀먹음이 있습니다. 이 내적 귀먹음은 신체적 귀먹음보다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귀먹음’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할 말과 할 일에 도취되어 서두르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에게 말하는 이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 꽉 막힌 사람이 되어 귀 기울여야 할 사람들에게 여지를 주지 못하는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저는 자녀들, 젊은이들, 노인들, 말과 설교가 아니라 귀 기울여 줄 사람이 필요한 많은 이들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문해 봅시다. ‘나는 잘 듣는 사람인가? 나는 사람들의 삶이 나에게 와 닿도록 하는가?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기 위해 시간을 낼 줄 아는가?’ 이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신부님들, 사제들에게 해당됩니다. 사제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하며, 경청해야 합니다. (...) 사제들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하지만, 먼저 들은 다음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모두 듣고 난 다음에 응답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항상 자신의 말만 후렴구처럼 반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습관적인 말만 반복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자기 생각을 표현하게 놔두지 못하고 끼어듭니다. 대화는 종종 말이 아니라 침묵을 통해 다시 태어납니다. 대화는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며 그의 고통, 그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민을 경청하기 시작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마음의 치유는 경청에서 시작합니다. 듣는 것입니다.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 마음을 낫게 합니다. “하지만 신부님, 항상 똑같은 말만 늘어놓는 지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 우선 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런 다음, 그 사람들이 말을 마치면, 그때 여러분이 말하십시오. 하지만 먼저 모든 것을 들어주십시오.

이는 주님께도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주님께 많은 요청을 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길 요구하십니다. 복음에서 사람들이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주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하고 대답하십니다. 그런 다음 첫째가는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8-31 참조). 하지만 먼저 “이스라엘아, 들어라”입니다. 먼저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우리가 매일 듣는 수많은 말들 가운데, 복음 말씀이 우리 안에 울려 퍼지기 위한 잠깐의 시간조차 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멈추지 않으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지나쳐 가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위해 잠시 머물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멀리 지나가 버리실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지나가실 때가 두렵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채 지나가시게 하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에 시간을 투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한 비결을 찾을 것입니다. 묘약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매일 조금씩 침묵하고 경청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말을 적게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듣는 것입니다. 항상 복음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받던 날처럼, 오늘 우리를 향해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귀를 활짝 여십시오. 예수님, 저는 당신의 말씀에 제 자신을 열고자 합니다. 예수님, 당신께 귀 기울이도록 저를 열어주십시오. 예수님, 닫힌 제 마음을 고쳐 주시고, 성급한 마음을 낫게 하시며, 인내할 줄 모르는 제 마음을 치유해 주소서. 

당신 태중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마음을 여셨던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로 하여금 매일 복음서 안에서 당신 아드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온유한 마음, 참을성 있는 마음, 자상한 마음으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도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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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9월 2021, 07:49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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