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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노예처럼 노동을 착취하는 것은 문화도 아름다움도 아닙니다”

최근 이탈리아 일간지 「일 세콜로 XIX」에 실린 이탈리아의 저술가 마우리치오 마지아니의 공개 서한에 담긴 물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답했다. 마지아니는 공개 서한에서 자신을 비롯한 다른 저술가들의 저서를 출판 유통하는데 있어 업체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적으로 착취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교황이 소설가 마지아니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답신은 8월 12일자 「일 세콜로 XIX」, 「라 스탐파」를 비롯해 다른 신문들에도 실렸다. 교황은 “죽음의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이익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lessandro De Carolis / 번역 이정숙

소설가 마우리치오 마지아니(Maurizio Maggiani)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 중 한 소설의 제목인 ‘울새의 용기’*가 이번엔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가 됐다. 마지아니는 이탈리아 일간지 「일 세콜로 XIX」(Il Secolo XIX)의 칼럼을 통해, 출판업계를 거인 ‘골리앗’으로, 경제 윤리에 의문을 표하는 자기 자신을 여린 ‘다윗’으로 비유했다. 왜냐하면 출판업계의 특정한 무심함을 보고 역겨움을 느겼기 때문이다. 곧, 출판 수익의 일부가 비인간적인 상황을 숨기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무심함, 고급스러운 출판물에 가려져 이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련의 폭력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무심함, 화려한 외관 뒤에 무방비한 상태로 위험에 노출된 먹잇감(노동자)과 잔인한 포식자(출판업계)의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무심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아니에게 있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잘 알려진 신념은 어떤 측면에선 펜의 “동료”다. 왜냐하면 교황은 “우리가 아름답고 지혜로운 작품들을 출판하기 위해 노예들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면 그 작품을 발표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폭로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큰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편집주: 『울새의 용기』(Il coraggio del pettirosso)는 마우리치오 마지아니의 유명 소설로,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캄피엘로 상과 프레미오 비아레지오 상을 수상했다. 이주민으로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 속에서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는 소설이다. 

마우리치오 마지아니에게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신이 실린 8월 12일자 「일 세콜로 XIX」 1면
마우리치오 마지아니에게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신이 실린 8월 12일자 「일 세콜로 XIX」 1면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교

프란치스코 교황과 리구리아 출신의 저술가 겸 기자인 마지아니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최근 독창적이고 강렬한 대화를 나눴다. 교회가 유럽의 공동 주보성인인 성녀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를 기념하는 지난 8월 9일, 교황은 마지아니가 서한을 통해 공개적으로 제기한 질문에 답했다. 앞서 마지아니의 공개 서한은 8월 1일자 「일 세콜로 XIX」의 칼럼에 실렸다. 이어 8월 12일, 일간지 「라 스탐파」(La Stampa)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 교황의 답신이 실렸다. 마지아니는 자신이 느낀 “부끄러움”을 교황과 직접 나누길 원했다. 그 부끄러움은 이탈리아 베네토의 한 도서 유통업체와 트렌토의 하청업체 공장에서, 자신과 다른 작가들의 저서를 출판 유통하는데 있어서 업체에 고용된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적으로 착취당한 일과 관련해 사법부의 고발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한 결과였다. 마지아니는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불법적이었다며, 문자 그대로 잔인했다고 말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마지아니는 자신이 신자가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썼다. “저는 그리스도의 ‘폭발적인 예언적 능력’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무덤에서 사흘 동안 인내하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기다리며, 하느님의 아드님의 부활을 보는 축복이나 은총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공개 서한을 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는 특별히 공통된 감수성을 이유로 내세웠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의무로 느끼는 이야기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 꼴찌들, 굴욕 당하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에 대한 업계 동료들의 무관심으로 제 질문은 ‘마치 쓸데없는 질문’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황 성하께 질문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고백하건대 어떤 상황을 판단하기에 앞서, 도덕적 권위를 지니며 나의 질문을 기꺼이 경청해 줄 사람은 교황 외에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며 정해진 노동 시간이나 권리도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현대판 강제수용소에서 존중을 감히 요구하면 발로 걷어차이고 주먹질 당하는 공포에 의문을 제기했다. “저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청렴하려고 노력하며 노동 착취로 의심되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하던 제 자신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소설가로서의 제 작업이 그토록 고결하다고 생각했지, 일반적으로 우리가 공급망이라 부르는 생산 시스템의 사슬의 일부라거나 다른 모든 것들과 동일하게 일탈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을 보기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도권의 핵심 사상 중 하나를 가져와 마지아니에게 답했다. “작가님은 쓸데없는 질문을 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인간 존엄성의 위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엄성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침묵으로 묵인하고 귀를 막는 가운데 ‘노예 노동’으로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짓밟혔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봉쇄조치 기간 동안 우리의 식탁에 계속 오르는 음식들의 이면에서 권리를 빼앗긴 수십만 명의 육체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들은 공급망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이자, 꼴찌입니다. 이들이 첫째여야 함에도 말입니다! 이들은 식량을 얻기 위한 노동의 합당한 대가를 빼앗겼습니다.” 이어 교황은 사실상 “영혼의 양식,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표현”인 문학조차 “얼굴과 이름을 지우면서 음지에서 행해지는 착취의 탐욕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면” 이런 종류의 오명에 대한 마지아니의 질문이 문학에 있어서 “아마도 훨씬 더 가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만약 불의에 근거한 어떤 작품이 출판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부당한 일”이다. 교황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형태의 착취는 죄”라고 강조했다. 

해야 할 두 가지

해결책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교황은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은 부당한 후퇴이자 선을 놓치는 것일 수 있다”며, 두 동사를 기반으로 하는 대응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죽음의 메커니즘”, “죄의 구조”를 “고발하는(denunciare)” 것이다. “무관심을 떨쳐버리고, 양심을 자극하기 위해 불편한 것까지 펜으로 써야 합니다. ‘나는 관심 없어, 내 일이 아니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에 마비되면 안 됩니다.” 두 번째 동사는 역설적으로 “포기하다(rinunciare)”이다. 교황은 “자신에게 돌아올 평판”을 계산하지 않고 공개 서한을 쓴 마지아니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고발하는 용기 외에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학과 문화를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연결된 오늘날 우리가 착취의 메커니즘에 따라 우리 형제자매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습관과 이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리가 없는 이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자기 자신의 지위와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은 강렬한 표징입니다. 더 큰 ‘예’를 위해 ‘아니오’라고 말하기, 인간 존엄성을 증진하기 위한 양심적 거부까지도 나아가야 합니다.” 

문화, 시장이 아니라 굴욕 당하는 이들의 목소리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의 교황은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간 영혼을 읽어내는 문학적 소양이 깊고 종교심도 훌륭하거니와, 그가 가난의 삶, ‘굴욕과 모욕을 당하는’ 삶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실제로 “돈과 이익이 군림하는 동안” 그 누구도 오늘날 굴욕과 모욕을 당하는 많은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화는 “시장에 지배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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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8월 2021, 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