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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를 위한 밤샘기도를 바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13년 9월 7일) 시리아를 위한 밤샘기도를 바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13년 9월 7일) 

아프간 사태, 리카르디 “교황님이 요청하신 단식과 기도는 전쟁에 맞서는 일종의 ‘반란’”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8월 29일 연중 제22주일 삼종기도에서 테러공격과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로 아비규환이 된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단식하고 기도하자고 촉구했다. 산 에지디오 공동체 설립자 리카르디는 교황의 호소가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교회 내에서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 만일 작은 단체들이 테러(공포)의 씨를 뿌릴 수 있다면, 다른 작은 단체들은 평화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저는 모든 이에게 기도를 강화하고 단식을 실천하라고 호소합니다. 지금은 기도와 단식, 기도와 참회를 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하면서, 기도를 강화하고 단식을 실천하십시오.”

최근 테러공격을 받고 절망에 빠진 수백명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피란길에 오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도궁의 창문에서 삼종기도를 통해, 이어 그보다 훨씬 광활한 가상세계의 창문인 교황 트위터 계정(@Pontifex)을 통해 전 세계 신자들에게 단식하고 기도하라고 다시 한 번 주문했다. 오는 9월 1일 총회를 여는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단은 교황의 이러한 호소를 받아들이고, 교황과의 친교 안에서 이탈리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인식과 헌신을 증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과 계획을 제시하기로 했다.

인도주의적 비극 앞에서… 기도와 단식

교황은 재위 기간 동안 이미 인도주의적 비극에 직면한 여러 기회를 통해 신자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유형의 “행동”을 촉구한 바 있다. 교황은 지난 2013년 9월 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타종교 신자들로 이뤄진 수백만 명과 함께 화학무기 공격으로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끔찍한 전쟁의 위기에 처한 시리아를 위해 기도와 단식의 날을 지냈다. 2017년에는 기근, 착취, 이주, 폭력에 시달리는 남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을 위해 기도하고 단식할 것을 요청했다. 행진과 시위에 이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대규모 밤샘기도가 열렸다. 당시 교황은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 신자들도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하지만 모두가 함께” 이 행사에 동참하도록 초대했다. 교황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유행의 파괴적인 물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시기이자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한 달 후인 지난 2020년 9월 4일 레바논을 위한 기도의 날을 제정하고 다른 교파의 형제자매들을 초대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시리아를 위한 밤샘기도 (2013년 9월 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시리아를 위한 밤샘기도 (2013년 9월 7일)

리카르디 “전쟁 중에 있는 나라들을 위해 매일 묵주기도 바쳐야”

교황은 당시 그 기회를 통해서도 기도와 단식을 요청했다. 같은 신자들 중 몇몇이 보기에도 이 두 가지 신심실천은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 사회·정치적 기반이 산산조각 난 지역에서는 물질적인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기도와 단식은 시대착오적인 신심실천이 아니며, 지나치게 정신적인 면에 치중한 신심실천도 아닙니다.” 산 에지디오 공동체의 설립자 리카르디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의 시도를 이 같이 설명했다. “저는 오히려 우리 교회 내에서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일에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혹은 예를 들어 80만 명의 난민이 있는 모잠비크 북부지역을 위해, 혹은 잊힌 수많은 전쟁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거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 손에 묵주를 들고 전쟁 중에 있는 모든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힘입니다. 가경자 조르조 라 피라(Giorgio La Pir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의 역사적인 힘을 믿습니다.’ 어떤 면에서, 기도는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맡겨 보호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하 산 에지디오 공동체의 설립자 리카르디와의 일문일답:

리카르디 교수님, 인도주의적 비극에 직면하신 교황님이 보편 기도를 바치도록 신자들을 불러 모으신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러한 비상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교수님이 보시기에, 소위 기도와 단식의 “마라톤”이라는 시도를 할 정도로 시급한가요?

“머나먼 전쟁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고, 무엇보다 먼저 무력감이 생깁니다. 그러다가 그 무력감에서 무관심이 생깁니다. 교황님이 람페두사 연설에서 ‘무관심의 세계화’라고 정의하셨던 바로 그 무관심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모든 것을 봅니다. 모든 것에 대한 소식과 영상이 우리에게 도달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관심해지고 맙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앞에서 미국도 무엇을 할지 알지 못한다면, 보잘것없는 사람에 불과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어?’ 하지만 저는 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모든 이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만일 작은 단체들이 테러(공포)의 씨를 뿌릴 수 있다면, 다른 작은 단체들은 평화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일상에서 물러나 단식하고 기도하며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단식과 기도는 전쟁에 맞서는 일종의 ‘반란’일 뿐 아니라, 역사의 주님이신 분께 평화의 길을 열어 달라고 간청하고 그분의 성령을 통해 사람들, 권력자들, 단체들에게 선한 뜻을 깨우쳐 달라고 간청하는 일입니다.”

교황님은 다른 종교 교파의 형제자매들도 연대를 이루도록 항상 초대하셨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러한 교황님의 시도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저는 2018년 7월 바리에서 열린 중동 지역 교회의 총대주교들과 지도자들과 함께하는 평화를 위한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교황님이 그리스도인들을 기도의 일치에 초대하셨던 일입니다. 순전히 복음적인 모습이었죠. ‘형제들’ 간의 화합은 우리를 움직이고 평화의 역사를 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는 종교적으로 친화되기가 쉽지 않음에도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뜻을 바꿀 수 있고, 역사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방향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타종교 신자들을 비롯해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가 관련됩니다. 왜냐하면 평화란 모든 종교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곧, 가톨리시즘, 이슬람, 동양 종교, 혹은 시편과 같은 공동의 위대한 유산을 생각한다면 유다교도 그렇게 말합니다. 이는 아시시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1986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평화를 위한 기도에 종교 지도자들을 초대하셨을 때 말입니다. 그 기도는 결정적이고 혁신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곧, 서로가 대적하지 말고 타인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제(8월 30일) 아침 교황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셨습니다. 교황님과 대화 중에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대해 말씀하셨나요? 교황님이 당신의 우려나 생각을 교수님과 나누셨나요?

“교황님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계시며, 매일 상황을 주시하고 계시지만, 사회적 연대가 국제적 연대와 함께하는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점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회칙 「Fratelli tutti」는 대헌장이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이러한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정신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전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시급하고 큰 전환점을 맞이한 역사적 국면에 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면서 보도 기사와 연관된 너무 많은 감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영적 연대와 구체적인 환대를 요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과 같은 비극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자문해 봅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장벽과 두려움의 사회인가, 아니면 희망과 환대의 사회인가?’ 희망과 환대는 물론 기도로 길러집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형태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남수단을 위한 기도와 단식의 밤샘기도
콩고민주공화국과 남수단을 위한 기도와 단식의 밤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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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8월 2021,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