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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성체는 성인들의 상급이 아니라 죄인들의 빵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6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삼종기도를 통해 성체가 우리를 낫게 한다고 강조하며,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의 비참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6월 6일), 이탈리아와 다른 국가들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거행합니다.* 오늘 복음은 최후의 만찬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마르 14,12-16.22-26 참조). 주님의 말씀과 행동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손에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 

*역주: 교회는 전통적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을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로 지내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주일로 옮겨 지낸다.

이처럼 단순하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위대한 성사를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예수님의 몸짓은 선물을 주시는 겸손한 몸짓, 나눔의 몸짓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생애의 정점에서,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기 위해 빵을 넉넉하게 나누어 주시는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한 파스카 만찬에서 몸소 당신 자신을 떼어 나누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삶의 목표가 나누는 데 있음을, 가장 위대한 일은 섬기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빵 한 조각에서 하느님의 위대함을 재발견합니다. 사랑이 넘치는, 나눔이 넘치는 약함 안에서 말입니다. ‘약함’이야말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쪼개지고 부서지는 빵처럼 약해지십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그분의 힘이 있습니다. 그분의 약함에서 말입니다. ‘성체에서 약함은 힘입니다.’ 곧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스스로 작아지는 사랑의 힘, 양분을 주고 생명을 주기 위해 쪼개지고 나눠지는 사랑의 힘, 우리 모두를 일치로 결합하기 위해 산산이 부서지는 사랑의 힘입니다.     

그런데 성체의 약함 안에 돋보이는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곧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빵을 주신 것은 ‘당신께서 배반당하신 밤’입니다. 주님께서 마음속에 가장 깊은 심연을 겪고 계시는 동안 가장 큰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하십니다. 그분과 함께 먹고, 같은 접시에 담긴 요리에 손을 대는 제자가 주님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배반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가장 큰 선으로 악에 대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아니오”에 대해 자비의 “예”로 응답하십니다. 죄인을 벌하시는 게 아니라, 그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고, 그를 위해 값을 치르십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와 똑같이 행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죄인임을 아시고, 우리가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시지만, 당신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에 일치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성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성체는 성인들에게 내려지는 상급이 아니라,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 ‘죄인들의 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모두 받아 먹어라.’”

우리가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실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에 새로운 의미를 주시기 위해 오십니다. 당신 눈에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그분과 함께 나눈다면, 그분께서 만족하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자비는 우리의 비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우리의 비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혼자 힘으로 나을 수 없는 약함을 사랑으로 고쳐주십니다. 어떤 약함입니까? 생각해 봅시다. 우리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원망을 느끼는 그런 약함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혼자 힘으로 나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우리 자신 안으로 고립되는 약함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혼자 힘으로 나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애처롭게 여기고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한 채 불평을 늘어놓는 약함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우리는 혼자 힘으로 나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현존을 통해, 당신의 빵을 통해, 성체를 통해 우리를 낫게 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성체는 이러한 (자기)폐쇄에 맞서는 효과적인 약입니다. 사실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굳은 마음을 온유하게 바꿔주십니다.     

성체는 우리를 낫게 해 줍니다. 우리를 예수님과 일치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성체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는 방식, 형제들에게 자신을 쪼개어 내어주는 그분의 능력, 선으로 악에 대응하는 역량을 닮게 해 줍니다. 성체는 우리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서 사랑을 통해 타인의 약함에 고개 숙이는 용기를 우리에게 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체의 논리입니다. 곧 타인을 사랑하고, 그들이 약해질 때 그들을 도와주도록 우리의 약함을 낫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받아 모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은 평생 동안 지속됩니다. 오늘 성무일도에서 우리는 찬미가를 바치며 기도했습니다. 찬미가의 네 구절은 예수님의 전 생애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찬미가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어 인생에서 우리의 여행 동료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식사 때에는 음식이 되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의 순간에는, 죗값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셨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 하늘에서 다스리시며 우리의 상급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그 상급을 찾으러 갑니다(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아침기도 찬미가 참조).

성체의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생명 또한 선물이 되도록, 당신의 태중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던 거룩한 동정녀께서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성체가 우리를 모든 타인을 위한 선물이 되게 해 주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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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6월 2021,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