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2월 10일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진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 내용은 매일의 기도에 관한 것이었다. 교황은 매 순간보다 하느님과 대화하기에 더 적합한 순간은 없다며, 모든 것이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과 만나는 데 특별한 자리인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24. 일상생활 중에 기도하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번 교리 교육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전례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어떻게 전례에서 일상생활로 스며드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 사무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 말입니다. (…) 그곳에서 하느님과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항상 그를 마음 안에 품고 있는 연인과 같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하느님과의 이 대화 안에서 집약됩니다. 모든 기쁨은 찬양의 이유가 되고, 모든 시련은 도움을 청하는 기회가 됩니다. 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마음으로 말하더라도 기도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삶 안에 항상 살아있습니다. 모든 생각은, 비록 “세속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기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지능에도 기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 지능은 신비를 들여다보는 창문입니다. 신비는 우리 앞에 있는 몇몇 단계를 밝혀주고, 그런 다음 현실 전체를 열어줍니다. 우리보다 앞서고 우리를 뛰어넘는 현실 말입니다. 이 신비는 혼란스럽거나 괴로운 얼굴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눈과 우리 지성의 눈이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이든, 거기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뜻하기보다,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무한한 은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사람의 마음 안에 불굴의 희망을 심어줍니다. 그 어떤 경험이 우리 삶의 여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하느님의 사랑은 그것을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순간들, 이를테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때에 기도를 배우지만, 매일매일의 사건 속에서 언제나 우리는 기도를 샘솟게 하시는 주님의 성령을 받는다. (…) 시간은 아버지의 손 안에 있다. 우리는 지금 아버지를 만난다. 어제도 아니요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 만나는 것이다”(2659항). 오늘 하느님을 만납니다. 항상 만남의 오늘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보다 더 멋진 다른 날은 없습니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지만, 미래는 더 나을 거예요.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환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고, 현실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현실이고, 오늘은 구체적입니다. 기도는 오늘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그리고 오늘을 은총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기도입니다. 오히려, 오늘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분노를 달래고, 사랑을 유지시키고, 기쁨을 배가시키며, 용서할 힘을 심어줍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사는 것 같지 않고, 은총이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서 일하고 우리를 살게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괴로움으로 떨어지게 하는 분노와 불만의 생각들이 일어날 때, 멈추어 서서 주님께 (이렇게) 말합시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그곳에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맞은 말씀을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부정적인 것의 쓴맛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속된 말을 사용하더라도 기도는 항상 긍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기도는) 여러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매일의 시작을 기도 안에서 맞이하고, 용기가 동반된다면,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문제들은 더 이상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호소가 되고 그분과의 만남의 기회가 됩니다. 주님께서 동행해 준 사람은 더 용기 있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과 모든 이를 위해, 또한 원수들을 위해서도 언제나 기도합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제가 이미 말했듯이, 성경이 자주 우리에게 행하라고 권고한 것처럼, 우리 원수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기도는 풍요로운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특히,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외로움에 사무쳐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아직도 자신들을 위해 고동치는 사랑이 없을 것이라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들의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예수님의 연민을 보여줬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고생하고 길 잃은 군중을 가엾은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마르 6,34 참조). 주님께서는 연민의 주님이시며, 가까이 계시는 주님이시며, 온유한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 세 단어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연민(compassione, 동정, 가엾이 여기는 마음), 가까이 있음(vicinanza, 가까이 다가감), 온유한 사랑(tenerezza, 애틋한 사랑)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다른 이들의 실수와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도록 도와줍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행하는 행실보다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항상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항상 비난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삶은 끔찍합니다. 그러한 삶은 끔찍하고 불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용서하고,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이해하십시오. 다른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다른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다른 이들을 온유하게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기도 중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동시에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각자가 각자를,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애정을 가지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매일매일과 모든 것이 그 안에 하느님 신비의 흔적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철부지 어린아이들’과 그리스도의 종들, 참행복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알려진 하느님 나라의 비밀 가운데 하나이다.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여 역사의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은 좋고 마땅한 일이지만, 일상의 사소한 상황들에 기도가 배어들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모든 형태의 기도는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비유하시는 그 누룩이 될 수 있다”(2660항). 

사람은 - 인간은, 남자와 여자는 - 한낱 숨결과도 같고, 풀과도 같습니다(시편 144,4; 103,15 참조). 철학자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을 파괴하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도 인간을 죽이기에 충분합니다.”[1] 우리는 나약한 존재들이지만, 기도할 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존엄성이고, 우리의 힘이기도 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언제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드시는 기도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1] 블레즈 파스칼, 『팡세』, 186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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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월 2021, 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