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예수님은 우리에게 ‘외적인’ 신앙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7일 연중 제26주일 삼종기도에서 이날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를 다시 읽었다.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의 삶은 “꿈이나 멋진 야심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책임”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인상을 활짝 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활짝 핀 얼굴”로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설교를 통해,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선과 악 앞에서 자신의 책임이나 양심을 요구하지 않는 신앙심에 반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제시된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 참조)를 통해서도 이를 드러내십니다. 포도밭에 일하러 가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맏아들은 충동적으로 “싫습니다.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즉시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지 않은 것입니다. 순명은 “예”나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언제나 행동으로 이뤄집니다. 포도밭을 일구고,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고, 선을 행하는 행동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단순한 비유를 통해 습관적이고 피상적인 실천으로만 여겨지던 신앙심을 극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신앙심은 그 사람의 삶이나 태도에 새겨지지 않는 피상적인 신앙, 그리고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에서 단순히 “의례적”인 신앙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는 이런 신앙심의 대표적인 인물은 그 당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마태 21,23)이었습니다. 주님의 훈계에 따르면, 세리와 창녀들이 이들보다 앞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31절 참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나 윤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나빠요!”라고 말하며 (그들이 오히려) 선을 행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을 삶의 모델로 가리키시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특혜자”로 제시하십니다. 저는 이 “은총”이라는 말, “은총”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회심이란 언제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누구에게나 베푸시는 은총은 주님께 마음을 열고 회심케 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설교를 귀 담아 듣고 마음을 뉘우치며 삶을 바꿉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사가를 생각해봅시다. 성 마태오는 세리였고, 조국을 배신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맏아들은 더 나은 사람으로 제시됩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싫습니다”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아니오”라고 말한 다음 “예”라고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회심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에 대해 지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우리가 “아니오”라고 대답한 후에도 단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잘못을 범할 때도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두십니다. 하느님의 인내를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항상 기다리시는지,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항상 우리 가까이 계시는지, 하지만 얼마나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는지 말입니다. 또한 당신 부성의 팔로 다시금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한없이 당신의 자비로 우리를 채워주시기 위해, 우리의 “예”를 떨리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다리시는지 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악에 대한 선의 선택, 거짓에 대한 진리의 선택, 이기주의에 대한 이웃사랑의 선택을 매일 새롭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죄를 지은 후에도 이러한 선택으로 회심하는 사람은,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는(루카 15,7 참조) 하늘나라에서, 첫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회심, 곧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하나의 과정, 도덕적 보호막에서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과정입니다. 때때로 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어떠한 포기 없이 그리고 영적 투쟁 없이 성덕의 길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참행복의 평화와 기쁨 속에 살기 위해 선을 위해 싸우는 것,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뜻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에 언제나 우리 마음을 열기 위해 구체적인 책임으로 이뤄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방식을 요청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꿈이나 멋진 야심들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작은 구체적인 책임이더라도, 은총이 없으면 행할 수 없습니다. 회심은 우리가 언제나 청해야 할 은총입니다. “주님, 더 나아지기 위한 은총을 제게 주십시오. 제게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은총을 주십시오.”

성령의 활동에 온순하게 따르도록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생명과 구원을 얻기 위해, 완고한 마음을 풀어주시며 회심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7 9월 2020,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