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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ican News

“예수님의 권능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첫 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타인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하느님의 논리를 따르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교황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전쟁, 기근, 코로나19 대유행의 소식을 접하면서 “가엾은 마음(연민)”이 드는지 자문해보자고 초대했다. 이어 ‘유심론’은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언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복음은 빵을 많게 하신 기적(마태 14,13-21 참조)을 소개합니다. (이 기적의) 무대는 예수님이 당신 제자들과 함께 물러가셨던 외딴곳에서 펼쳐집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치유를 받기 위해 그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병자들을 고쳐주고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저녁때가 되어도 군중이 아직 그곳에 남아있자,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던 제자들은 스스로 먹을거리를 살 수 있도록 군중을 돌려보내자고 예수님에게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16절). 제자들의 얼굴을 상상해봅시다! 예수님은 (당신이) 무엇을 행하실지 잘 알고 계셨지만, 그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찾고 살 수 있도록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눔을 위해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무엇을 마련하셨는지” 물으십니다. 이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태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태도를 두 번째 태도로 이끄십니다. 왜냐하면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15절)라는 첫 번째 제안은 실용적인 사람의 제안이지 너그러운 사람의 제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통해 어제와 오늘의 당신 벗들을 하느님의 논리로 가르치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느님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타인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논리입니다. 책임을 피하지 않는 논리이며, 모른 체하지 않는 논리입니다. 타인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논리를 말합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사전에 없습니다.

열두 제자들 가운데 겨우 한 명만 현실주의 시각으로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고 말하였다”(17-18절).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군중에게) 나누어주도록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19절 참조). 그런데 그 빵과 물고기는 동나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고도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행동을 통해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랑의 표징으로, 고단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당신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너그러우심이라는 표징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백성의 삶속으로 들어가시어 (백성의) 고단함과 한계를 이해하시는 한편, 아무도 길을 잃거나 실패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당신 말씀으로 기르시고,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음식을 내어 주십니다.

이 복음 이야기에서 성찬례에 대한 언급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찬미의 기도, 빵을 떼는 행위, 제자들에게 음식을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신 부분입니다(19절 참조). 아울러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인 성체성사적 빵과 지상의 삶을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인 빵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구원의 빵으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시기 전,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비록 그분과 함께 지내지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잊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십니다. 때때로 정신(영)과 물질은 상반되지만, 사실 유물론(materialism)과 마찬가지로 유심론(spiritualism) 역시 성경과 거리가 멉니다. 이는 성경의 언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드러내신 연민과 온유한 사랑은 감상주의가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대신 짊어지시는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과 동일한 태도를 갖추라고, 나아가 타인의 필요에 연민을 보이며 성찬의 식탁에 다가가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문제, 질병이나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을 보셨을 때 복음에서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연민(가엾은 마음)은 순수하게 뻣뻣한 감정이 아닙니다. 참된 연민은 ‘함께 (고통을) 겪는 것’, 타인의 고통을 우리가 짊어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다음과 같이 자문해보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엾은 마음이 드는가? 전쟁, 기근, 코로나19 대유행이나 많은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 나는 그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가? 나는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엾은 마음이 드는가? 나는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혹은 그들을 (외면하고) 다른 쪽을 바라보며 ‘각자 알아서 해야지’라고 말하는가?” 이 “가엾은 마음”, “연민”이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엾은 마음”, “연민”은 아버지의 배려 넘치는 사랑에 대한 신뢰이자 용기 있는 나눔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알려주시는 여정을 우리가 걸을 수 있도록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이 여정은 형제애의 길입니다. (이 길은) 특히 이 극심한 때에, 이 세상의 가난과 고통에 대응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입니다.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해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이기에, 우리를 이 세상 너머로 투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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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8월 2020,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