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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페두사부터 코로나19까지, 교황 그리고 형제애의 도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람페두사 섬을 방문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방문 당시 서로를 형제로 보고 느끼자고 했던 교황의 호소가 더욱 절박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시기에는 혼자 힘으로 자기 목숨을 구할 가능성이 없다. ‘형제애’야말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길이다.

ALESSANDRO GISOTTI / 번역 이창욱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9-10 참조)고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물음은 다른 사람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너에게, 우리 각자에게 던져진 물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람페두사 섬을 방문한 지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교황은 지중해 중심에 위치한 이 섬의 운동경기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이 같이 말했다. 불과 몇 시간의 방문에 불과했음에도 교황 직무를 위한 “짜임새 있는” 일정이었다. 유럽의 남쪽에 위치한 바로 거기서, 교황은 “바깥으로 나가는 교회”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드러냈다. 현실은 중심보다 변방에서 더 잘 보인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전쟁과 비참한 삶에서 도피한 난민들 한 가운데서, 교황은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라는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아울러 교황은 람페두사 섬에서 카인과 아벨에 대해 말하면서, ‘형제애’에 관한 물음도 전면에 내걸었다. 이는 우리 시대에도 근본적인 물음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시대의 물음일 것이다.

교황의 모든 직무는 형제애라는 중심축을 둘러싸고 있다. “형제”라는 단어는 바로 2013년 3월 13일 저녁에 교황이 전 세계에 던졌던 첫 마디다. 형제애의 차원은, “형제(frate)” - 라틴어 프라테르(frater), 이탈리아어 프라텔로(fratello) - 라는 유일한 호칭으로 불리길 원했던 아시시의 가난한 성인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명으로 택했던 교황의 DNA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형제적(Fraterno)이라는 표현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한 후, 교황 직무의 수많은 업무가 확실히 모든 이에게 훨씬 뚜렷하고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 직무 첫 7년을 거슬러 가보면, 그의 여정에서 다양한 이정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여정은 2019년 2월 4일 알아즈하르의 대이맘과 함께 아부다비에서 역사적인 문서에 서명을 하도록 이끌었다. 여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분명 아랍 땅에선 도착점이지만,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람페두사의 물음”으로 되돌아와서, 교황이 이와 똑같은 표현을 다른 상징적인 방문에서 사용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당시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레디풀리아 군인묘지를 방문했다. 2014년 9월 13일에 행한 강론에서도, 아우인 아벨을 살인한 다음 카인과 하느님이 나눈 대화를 극적으로 묘사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교황은 아우를 지키는, 더 나아가 모든 형제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느끼기를 거부하는 태도 안에 인류를 뒤흔드는 온갖 악의 뿌리가 있다고 봤다. 교황은 이런 태도야말로 “복음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와 정확히 반대된다”고 강조했다. “형제를 돌보는 사람은 주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갑니다. 반면에 그렇게 행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의무를 등한시하는 사람은 ‘나에게 무슨 상관이야? 나와는 상관없어’라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 동안 우리는 인간의 형제애에 공통된 소속감이 완전히 다양한 형태의 역동성으로 기울고, 교회일치적 분야부터 종교적 분야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차원부터 정치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는 모습을 본다. 다시금 교황의 생각과 행동을 잘 표현해주는 다면체적 모습이다. 사실 형제애는 수많은 단면을 갖고 있다. 사람들도 제각각이고 그들 간의 관계 또한 수없이 다양하다.

교황은 바티칸 정원에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흐무드 압바스(아부 마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나란히 참석한 기도와 평화의 만남을 통해 형제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교황은 이스라엘 지도자와 팔레스타인 지도자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여러분이 지금 이곳에 함께하신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룩한 형제애의 위대한 표징이자 역사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오늘 우리가 서로를 형제로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길로 이끄시려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의 신앙이 활성화된 형제애의 이름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로마의 주교 교황과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만남이 실현됐을 때, 교황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 총대주교에게 (형제로서)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청했다. 쿠바에서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가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는데, 서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강조됐다. “우리는 ‘직접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서로 만나는 그리스도인 신앙을 지닌 형제로서 기쁘게 함께 모였습니다.” 아울러 형제애는 교황 직무의 가장 강력하고도 놀라운 행위들 중 하나를 해석해주는 핵심단어이기도 하다. 교황은 피정을 위해 바티칸으로 초대받아 온 남수단 지도자들의 발에 입을 맞추고자 무릎을 꿇는 행동을 보였다. 형제애를 위한 평화의 행동이었다. 교황은 진심을 다해 이렇게 말했다. “평화협정에 서명한 여기 계신 세 분에게, 저는 여러분의 형제로서 이렇게 부탁합니다.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제 마음을 다해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교황 직무 초기에 심어진 씨앗이 「인간의 형제애」 공동 선언문이라는 꽃을 피웠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변화”, 곧 분명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욱 급변하는 이 시대에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문제를 더는 미루지 않고 책임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네 형제는 어디에 있느냐?” 지난 2013년 7월 8일 오전 람페두사 섬에서 제기된 이러한 물음 겸 호소는 오늘날의 바로 “그” 물음이기도 하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고, “항상 그렇게 해 왔다”는 식의 이기주의적 논리로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장악할 수도 없는 원수 앞에서 무력하고 의심에 가득 차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일어서기가 힘겨운 지경이다. 똑바로 서기 위한 적절한 토대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토대가 바로 형제애라고 교황은 반복한다. 바로 그 지점이 인류를 위한 견고한 집을 지어야 하는 유일무이한 주춧돌이다.

코로나19는 국가들 간 발전 수준이 얼마나 천양지차인지, 국내 소득 차이 또한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형제들이다. 그 배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휩쓸어버리는 폭풍의 파도에 흔들리고 있다. 교황은 지난 3월 2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돌풍이 불면 언제나 자신의 겉모습만 걱정하던 우리들의 ‘자아’라는 가면과 고정관념으로 뒤덮인 기만도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소위 ‘형제들 간의 소속감’이라고 하는 ‘복된’ 공동의 소속감도 민낯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전염병의 대유행” 앞에서 다소 마비된 우리의 양심을 무엇이 다시 일깨울 수 있을까. 예컨대 우리의 문을 두드리지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전쟁과 기근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 앞에서 말이다. 교황은 지난 5월 14일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상기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미처 알고 있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다른 많은 전염병들이 존재합니다. 눈을 돌려 주위를 바라봅시다.” 오늘, 7년 전 람페두사 섬에서 호소했던 것처럼, 교황은 우리에게 다른 곳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말로 우리가 서로를 지체요 형제라고 느낀다면, 다른 곳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곳이란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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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7월 2020,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