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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충실한 삶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개인의 관심사, 가족 혹은 경력에 대한 집착이 아닌, 섬김과 감사야말로 그리스도인 삶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이들이 이를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하루 앞둔 6월 28일 연중 제13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복음을 묵상하며 이 같이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복음(마태 10,37-42 참조)에는 주님께 대한 우리의 충실한 삶을 흔들림 없이 온전히 살라는 초대가 강하게 울려 퍼집니다. 예수님은 희생과 고통이 요구될 때도 복음적 요청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는 이에게 요구하시는 첫 번째 요구는 가족 간의 애정보다 당신에 대한 사랑을 더 높이 두라는 요구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물론 예수님은 부모나 자녀에 대한 사랑을 과소평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만일 혈연관계를 첫 자리에 둔다면 참된 선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잘 아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자주 봅니다. 위정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부 부패는 바로 혈족에 대한 사랑이 조국에 대한 사랑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들이 친족에게 공직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주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클 때는 좋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문제와 관련된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을 겁니다. 가정사가 복음과 반대되는 선택에 관여하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반면 부모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정화되고 활성화될 때, 그때는 가족 안에 선한 결실을 풍성히 맺게 되고 가족이라는 한계를 훨씬 더 뛰어 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학자들을 어떻게 꾸짖으셨는지도 떠올려봅시다. 율법학자들은 부모에게 드릴 공양을 제대에 예물로 바치거나 교회에 바치면 된다고 하면서, 정작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해드리지 못하게 합니다(마르 7,8-13 참조).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은 부모와 자녀에 대한 참된 사랑을 요구하지만, 만일 먼저 가족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런 태도는 항상 잘못된 길로 이끕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8). 지름길을 찾지 말고, 주님이 몸소 걸어가셨던 길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없는 참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값을 치르지 않는 참된 사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된 희생과 많은 십자가를 지고 자녀를 위해 수없이 희생하는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짊어진 십자가는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기 위해, 가장 혹독한 시련의 때에도 우리를 지지하시기 위해 우리 곁에 항상 계시기 때문입니다. 소심하고 이기적인 태도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동요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39절). 다시 말해, 사랑을 위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위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해, 타인을 섬기기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면, 목숨을 얻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의 역설입니다. 이 경우에도, 하느님 덕분에, 아주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우리는 최근 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돕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생명과 기쁨의 충만함은 복음과 형제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놓음으로써 발견되는 것입니다. 열림, 환대, 선의를 통해 말입니다. 

이렇게 실천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너그러우심과 거저 베푸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0.42). 하느님 아버지의 너그러운 베푸심은 형제들에게 행한 가장 작은 사랑과 섬김의 몸짓도 허투루 보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어떤 신부님이 본당에서 한 어린이의 말을 듣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어린이는 신부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신부님, 이 돈은 제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날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저금한 돈이랍니다. 얼마 되지는 않아요.” 작은 정성이지만, 아주 위대합니다! 전염성 강한 감사입니다. 이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보살피는 이들에게 감사하도록 우리 각자를 도와줍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어떤 봉사를 해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봉사가 거저 베풀어진 것입니다. 자원봉사를 생각해보십시오. 이탈리아 사회의 가장 위대한 일들 중 하나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을 생각해봅시다. (...) 그들 중 많은 이가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 때문에, 단순히 봉사 때문에 그렇게 행한 겁니다. 거저 베풀고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는 표시이지만, 그리스도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단순하지만 참된 표징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감사하고 거저 베푸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셨고 그분을 십자가까지 따르셨던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우리가 늘 하느님 앞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의탁하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판단하게 맡기도록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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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6월 2020,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