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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이신 반석 위에 교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의 주보성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 삼종기도에서, “가장 큰 은총, 곧 목숨을 내어주는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삶을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삼종기도 후에는 “로마에서 존엄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로마 시를 위해 기도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로마의 주보성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을 지냅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하고 묻힌 장소 가까이에 있는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선물입니다. 하지만 오늘 전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래 전에 베드로 사도가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체포되어 감옥에 있었고, 교회는 존립을 두려워하면서 베드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천사가 감옥에서 그를 구하러 내려왔습니다(사도 12,1-11 참조). 그런데 몇 년 뒤,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수감되었을 때도, 교회는 확실히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상황에서 그의 목숨은 죽음을 모면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처음에는 (감옥에서) 풀려났고 그 다음에는 그러지 못했을까요?

왜냐하면 베드로의 삶에는 우리 삶의 여정을 비추어줄 수 있는 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많은 은총을 베푸셨고 그를 악에서 구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종종 필요한 순간에만 주님께 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더 멀리 내다보시고 우리가 더 멀리 가도록, 그분이 주시는 선물만 찾지 말고 그분을 찾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분은 바로 모든 선물의 주님이십니다. 그저 (우리의) 문제만 그분께 맡기지 말고, (우리의) 삶을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이처럼 그분은 마침내 우리에게 가장 큰 은총, 곧 생명을 내어주는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삶이 선물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모든 이에게 유효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를 위해서나 연로한 부모에 대한 자녀를 위해서나 가치 있는 일입니다. 여기서 저는 가족으로부터 홀로 남겨진 수많은 노인들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치 쓰고 버려진 물건 같은 노인들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우리 시대의 비극입니다. 노인들의 고독 말입니다. 자녀들이나 손주들의 생명은 노인들을 위해 선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결혼한 사람이나 축성자들이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 누구든지, 집과 일터에서, 어디서든 적용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선물이 되는 가운데 성장시켜주시고자 하십니다. 오직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타인에게 우리 자신을 (선물로) 내어줄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성 베드로 사도를 바라봅시다. 감옥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게 아닙니다. 여기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의 선물은 박해의 장소를 아름다운 희망의 장소로 변화시켰습니다. 이 희망의 장소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매 순간의 은총뿐 아니라, 삶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베드로의 삶을 바꾼 대화를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6,16-17 참조). 예수님은 그를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말 그대로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을 했기 때문에 너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주목해 봅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이라고 말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너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복된 삶의 비결은 무엇이고, 행복한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어떤 성인의 조각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역사에서 위대한 분이셨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분이 하신 말씀이나 행하신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서’ 그분에게 어떤 지위를 주는지, 내 마음 안에서 예수님께 어떤 지위를 드리는지가 중요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베드로는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18절)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단단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반석”이라고 불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나중에 많은 잘못을 행할 것이고,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도 않았으며,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스승을 부인하기까지 이를 것입니다. 하지만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삶을 건설하도록 선택받았습니다. 성경 본문은 “살과 피” 위에, 다시 말해 자기 자신 위에, 자신의 능력 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말하지 않고,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세우라고 말합니다(17절 참조).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서 시몬은 반석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면서, 복음에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주었던 사도 바오로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두 분 사도 앞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삶을 어떻게 설계하는가? 순간의 필요만 생각하는가, 아니면 내가 진실로 필요로 하는 분은 나를 선물이 되게 하시는 예수님이라고 믿는가? 그리고 나는 삶을 나의 능력 위에 세우는가, 아니면 살아계신 하느님 위에 세우는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셨던 성모님께서 그분을 매일의 바탕에 두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또한 성모님이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선물로 만들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전구해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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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6월 2020,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