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le giovani.jpg

타글레 추기경 “교황 메시지는 일상 안에서의 선교를 재발견하라는 권고”

「바티칸 뉴스」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전교기구에 보낸 메시지와 관련해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타글레 추기경은 “준비된 계획”에 대한 능률만능주의와 기능주의의 유혹을 극복하고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Alessandro Gisotti / 번역 이재협 신부

충격은 교회의 선교임무에 새로운 도약을 위한 좋은 기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전교기구를 위한 메시지를 발표한 지 일주일,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바티칸 뉴스」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Luis Antonio Tagle) 추기경과 교황 메시지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일문일답을 나눴다. 타글레 추기경은 교황의 요구가 실제로도 실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곧, 성공이나 능률만능주의의 전리품으로 전락해 선교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실용적인 것들에 의존하지 않으며, 올바른 선교 정신을 새로이 발견하고, 모든 민족에게 기쁜 소식이 전파돼야 한다.

교황청 전교기구에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는 전교기구뿐 아니라 많은 이에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다시금 선교가 교회의 정체성과 생활의 중심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교황님 메시지에서 어떤 부분이 추기경님께 특별히 인상깊으셨나요? 

“교황청 전교기구에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님 메시지의 많은 부분이 제게 인상 깊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첫 번째로 교황님은 올해 5월에 열렸어야 할 전교기구 연례총회에서 각 나라의 책임자들에게 연설을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총회는 취소됐죠. 하지만 교황님은 예정된 연설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으시고, 메시지를 작성하여 보내셨습니다. 저에게 이번 교황님 메시지는 단순히 교황님의 말씀과 지침들이 아니라, 선교를 향한 그분의 열정과 교황청 전교기구를 향한 관심을 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교황님 메시지를 읽으면서 교황님의 마음과 열정, 그분의 희망과 염려를 함께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번 메시지는 특별히 각국의 교황청 전교기구 책임자들에게 보내졌지만, 모든 교회가, 그러니까 모든 하느님 백성이 이번 메시지를 읽고 연구하며 묵상하기를 바라셨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의 메시지는 분명 각국 책임자들을 위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메시지는 선교의 정신과 선교 사명에 관한 모든 교회의 양심성찰을 위한 도구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교황님은 선교가 “세상의 효율적 방법”을 모방하는 전략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셨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의 새로운 과제들 안에서 능률만능주의나 기능주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의 선교가 풍요로운 열매를 거두고 투명하게 하는 방법들 혹은 효율에 대해 반대하신 게 아닙니다. 교황님은 비록 유익하고 좋은 것일지라도 그저 본보기로 제시된 모델이나 혹은 경영을 가르치는 학교가 사전에 정한 표준 규범과 결과만을 사용하여 그것들만으로 교회의 선교를 ‘측정(평가)’하는 위험을 경고하십니다. 보다 능률적인 교회 조직은 가장 작은 선교 조직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선교란 성령이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교황님은 우리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진리를 언급하십니다. 곧, 하느님 안에서의 신앙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에 의해 시작되고 이뤄진다는 것,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됐다는 것, 아버지에게서 오시는 성령을 부활하신 주님이 보내주신 교회는 이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교회와 교회의 사명에는 처음부터 인간적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하느님 선물을 식별하며, 신앙 안에서 그 선물을 받아, 주님이 원하신 대로 그것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전교기구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닙니다. 이러한 은총의 뿌리에서 분리된 모든 교회의 활동은 단지 기능적이고 세부적인 활동에 불과합니다. (은총의 뿌리에서 분리되면) 하느님의 ‘개입’과 놀라움은 우리가 계획한 활동들에 해로운 것으로 간주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기능주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교회의 생명과 교회 선교의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원천은 예수님과 성령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교회를 살아 숨쉬게 하는 원천인 하느님의 선물 없이는 우리의 쉽지 않은 작업이란 피로하고 지루하고 걱정스럽고 경쟁적이고 불확실하고 좌절스러울 뿐입니다. 성령의 은총에 굳게 뿌리내릴 때만이 우리는 기쁨과 희망으로 우리의 사명과 거기서 오는 어려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아주 강력한 비유로 “집 안에 거울을 부수라”고 교황청 전교기구에 권고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자아도취(나르시시즘)와 자기만족에 대한 유혹이 질병과 같은 것이라고 염려하셨습니다. 교회를 병들게 하는 이러한 바이러스에 대항해 어떤 “예방접종”을 할 수 있을까요?

“나르시시즘은 순전히 실용적인 측면, 혹은 선교의 기능적인 측면만 강조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경우 선교는 서서히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나의 이름, 나의 성공, 자아실현, 나의 명성, 그리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집착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 자비의 기쁜 소식, 예수님의 연민과 동정, 성령의 놀라운 작용에 집중하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좋은 결과가 발생할 때, 나르시시즘적 자아도취와 자기 자신에게 더 집착하고자 하는 욕망은 자기만족으로 이어집니다. 나의 업적들이 내 능력에 의지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따라서 (자기만족에 빠진 이들은) 하느님과 다른 이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무한한 나의 능력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족은 나르시시즘적 자아도취를 더욱 강화합니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한 인간이나 한 단체가 스스로 고립되어 자신만의 세계라는 함정에 빠지게 합니다. 이것은 선교에 본질적으로 반대됩니다. 이러한 모습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가 부수기를 바라신 ‘자기중심주의’라는 거울입니다. 곧, 우리는 나만을 바라보거나 나를 둘러싼 환경만을 보게 하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넘어 다른 이를 보게 하는 투명한 유리를 사용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황님이 말씀하셨듯 우리는 창문과 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향해, 이웃을 향해, 골목을 향해,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길 잃고 헤매는 이들을 향해, 젊은이를 향해, 상처입은 이들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가야 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들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진정한 거울입니다. 자아도취와 자기만족을 위한 예방접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 예방접종의 이름은 ‘바깥으로 나가는 교회’입니다. 그럴 때라야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울 바꾸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또한 자신을 홍보하기보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삶의 자리로 다가갈 것과 하느님 백성의 신앙감각을 신뢰할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스스로 질문할 준비가 되어있나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선교가 성령의 활동이심을 다시 일깨우시면서, 교회가 무엇인지, 성령의 성전이 어떤 곳인지, 하느님 백성이 누구인지, 선교의 능동적인 주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황청 전교기구뿐 아니라 선교하는 다른 모든 단체들은 선교가 그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며 선교의 유일한 후원자들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살아있는 성전인 교회는 그 시작에서부터 선교의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향한 원조와 기도, 사랑의 활동 안에서의 교황청 전교기구의 시작을 정확히 상기시키십니다. 교황청 전교기구는 일상의 생활 안에서 성덕을 살았던 이들에 의해 탄생됐습니다. 그 성덕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들과 예수님의 선물을 나누는 길로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진 수단, 곧 기도와 사랑의 활동을 사용했습니다. 교황님은 교황청 전교기구와 교회가 그리스도인 삶의 일상에서 선교를 실현하고 선교의 감각을 지닐 것을 격려하십니다. 아울러 선교란 심오한 그리스도인 삶이 아니라 간결한 삶의 영역, 가정, 일터, 학교, 회사, 사무실과 본당의 일상적인 그리스도인 삶에서 실현되기를 격려하십니다. 믿음이 하느님의 큰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 신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저는 큰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체험들을 통해서 풍요롭게 되고 행복해진다면 우리는 이 선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수행해야 할 의무이기보다 우리가 받은 선물을 나누는 것입니다. 선교의 사명에로 불리움 받은 길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걸어갑시다. 선교와 공동체 정신은 서로 만납니다.”

교황님 메시지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기부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교황님은 교황청 전교기구가 기금마련을 위해 몰두하는 비정부기구로 변질되어 “통 큰 기부자들”을 찾으러 나가려는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황님의 이러한 권고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교황님의 일관된 말씀을 보면, 기부는 선교를 위한 기도가 동반되는 사랑의 봉헌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기부금 또는 모금을 선교와 신앙의 선물의 일부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 선물의 지평이 조직관리의 효율성으로 대체될 때, 기부금은 사랑과 기도, 인간 활동 열매의 나눔이라는 유형적 표지가 아니라, 순전히 이용해야 할 자금 따위로 변질됩니다. 위험한 것은 기부금이 후원자의 자선에 대한 표현으로 실현되지 않은 채 단지 선교라는 이름으로 축적되는 것입니다. 곧, 모금의 목적이 선교에 대한 양심과 기쁨을 일깨우기보다 단순히 설정한 액수에 다다르고자 하는 것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금전적 목표에 시선이 집중되면 큰 돈을 기부하는 이들에게 의지하려는 유혹이 강해집니다. 따라서 저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만날 기회를 가지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고, 일상생활에서 선교사가 되기를 권고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은 돈이 아니라, 기쁨으로 헌신하는 선교사가 되는 신자들입니다. 한편 우리 신자 여러분의 작은 나눔은 그것들이 모여서 도움이 필요한 교회를 향한 교황님의 보편적 자선의 유형적 표현이 됨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공동선을 위해 내어놓는 모든 나눔에 결코 작은 것이란 없습니다.” 

교황님은 선교 없이는 교회가 없다고 강조하시며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이 전한 내용을 다시 떠올리셨습니다. 선교사명을 자신의 DNA로 하는 인류복음화성의 장관으로서, 추기경님의 희망은 무엇인가요? 

“각 나라의 전교기구 책임자들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는 「복음의 기쁨」의 주제들을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 「복음의 기쁨」은 교회론적 유산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학을 연결하는 우리 시대를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고유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선교적 전망에 관한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의 교황 권고 「현대적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의 영향 또한 보여줍니다. 최근 60년 동안 우리는 교회의 정체성과 존재이유가 선교라고 단언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교회의 선교는 교회가 받은 선물을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1서의 다음 말씀을 기억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1요한 1,1-4 참조). 저는 우리가 이와 같은 단순함, 교회의 원천적 기쁨, 그리고 사도적 사명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현재 우리에게 처한 상황처럼 이 특별한 순간을 보내며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코로나19 대유행은 인류 가정에 많은 고통과 걱정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와 선교에 있어 코로나19 대유행이 가져온 충격을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아마 우리 삶에 있어 이번 사건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현재 고립, 실직, 무임금 등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으로 인한 많은 것이 불확실한 현실에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연민의 마음, 영웅과 같은 용감한 행동들, 가족에 대한 사랑, 간절한 기도, 하느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발견, 영성체에 대한 굶주림, 단순한 삶의 형식으로의 복귀, 창조주의 돌보심 등 많은 선물을 풍부하게 주셨습니다. 교회가 일상의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을 때에도, 성령은 아무런 제약 없이 당신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교회는 지금 성령의 놀라우신 일들을 바라보고 놀라워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선물을 소중히 여깁시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많은 시간동안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성령이 활동하신 역사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7 5월 2020,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