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의 침묵 기도로 거행된 십자가의 길

Benedetta Capelli / 번역 박수현

십자가의 길과 빛의 길. 십자가와 빛. 예수님의 고통 속에는 인류의 재탄생이, 예수님의 순교 안에는 영원한 삶의 확고함이 있다. 성금요일(십자가의 길) 예식이 성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올해 십자가의 길은 (예년처럼 전통에 따라)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축성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베드로 대성전은 코로나19로 점철된 이 어려운 시기에 점점 가정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심장부다. 전염병은 서로 거리를 두게 하고 눈물과 외로움을 자아냈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십자가 아래에 모였다. 이날 십자가의 길 예식에 모인 이들은 한편으로 패배하고 거부된 이들이지만 하느님 눈에는 모두 동등하고 굳건한 이들이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이들의 스러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주 전 코로나19 판데믹 종식을 위해 기도한 모습대로, 산 마르첼로 알 코르소 성당의 ‘기적의 십자가’가 이날 예식에 함께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전경에 선 교황 앞에는 십자가의 길을 표시하는 횃불, 그리고 텅 빈 광장만 있었다. 광장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으나, (십자가의 길 기도에 함께한 이들의) 십자가를 향한 질문, 그리고 진실과 눈빛들로 충만했다. 파도바의 두에 팔라찌(Due Palazzi)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또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십자가 앞에 섰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드러나지 않게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어둠 속에 살면서 악에게서 매력을 느끼거나 악의 가장 심각한 결과를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강박에 빠져 있을 때 복음에서 불어오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 위에 부어진 예수님의 향유를 느끼고, 빛과 하느님의 자애로운 포옹을 통해 부활 안에서 희망을 느낀 사람들의 ‘스러진 목소리’를 언제나 들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손에는 못이 박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쓴 하느님이시다. 교황은 십자가의 길 각 처에서 고유 묵상을 듣고 기도했다. 예식을 마친 다음에는 축복을 내렸다. 교황의 기도는 교도소에서 침묵하며 지내는 이들의 수많은 신음하는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었고, 코로나19 판데믹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온 세상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었다.

눈물의 은총

십자가를 지고 간 이들은 오늘날의 키레네 사람, 오늘날의 베드로, 오늘날의 바라빠였다. 십자가를 진 이들 중에는 저 모든 인물과 동질감을 느꼈던 전과자 마이클도 있었다. 이제는 새사람이 된 마이클은 첫 번째 묵상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떠올렸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르 5,13). 십자가의 길 제1처에서 군중은 이같이 외치며 예수님을 비난했다. 이 외침은 마이클에게 있어 지금도 마음속에 꺼지지 않은 채 강력하게 울려 퍼졌다. 십자가형은 종신형 선고자들이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 재소자는 감옥이 오히려 “구원”이었다고 말했다. “저는 지난 날 제가 저질렀던 악을 부끄러워하며 눈물 흘리기를 아직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악에 굴복하지 않는 삶

한 남자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된 딸의 죽음을 겪으며 살아가는 부모. 그들이 지고가는 십자가의 무게는 무겁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 속에서 주님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지지해주고, 배우자로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며” 그들을 만나러 오셨다고 묵상글에 썼다. 그들의 삶은 악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들의 삶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문이 됐다.

“기도합시다. 오 주님, 저희의 마음에 당신의 희망을 부어 주시어 저희 삶의 어두운 순간에도 현존하시는 당신을 알게 하소서.” 

죽음이라는 넘어짐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의 무게 때문에 처음으로 넘어지신다. 한 재소자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만큼 불의한 것, 그리고 세상에 선한 것이 없다고 믿는 것만큼 불의한 것은 없다면서, 자신은 이미 내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저희의 나약함을 도우러 오시고, 저희 일상 속에 흩어진 당신 사랑의 징표들을 묵상할 수 있는 눈을 주소서.”

심장에 꽂힌 칼

이제 십자가는 코로나19 환자들의 치료에 종사하는 바티칸 의료기관 소속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으로 전해졌다.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고 보살피는 손들이다. 

우리 시대의 마리아처럼 심장을 찌르는 칼날과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는 굳건하다. 그 칼날은 아들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의가 담긴 눈빛으로, 정죄 받은 아들을 향한 그녀의 큰 사랑으로 밀쳐낸 판단과 증오의 칼날이다. (제5처의 묵상을 통해)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패거리의 법을 거부한” 사람,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의 인간성 또한 감옥 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교도소 동료가 처음으로 아내와 면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 그 동료를 위해 자신에게 소중한 브리오슈 빵 한 꾸러미를 내민 동료의 애정 표시에서 말이다. 이 행위는 “기쁜 케레네 사람”이 되려는 소망을 마음에서 생겨나게 하는 행동이었다. 

희망의 싹

“내 얼굴을 찾으라.” 편견과 두려움을 넘어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들의 얼굴을 관상함으로써 그 얼굴을 찾을 수 있다. 감옥 안에 있는 이들의 침묵과, 눈물이 열어놓은 틈 사이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의 싹”이 있다. 악이 내 인생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한 재소자는 십자가의 길 묵상을 통해 온 가족이 심연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부끄러움으로 고개 숙인 어머니, 감방에서 절망하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오 주님,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시니, 저희의 나약함을 지탱해주시고, 악의 사슬에서 저희를 해방시켜 주시며, 당신의 전능하신 방패로 보호해주시어, 저희가 당신의 자비를 영원히 노래할 수 있게 하소서.”

희망은 흩어진 조각을 다시 맞추는 것

(십자가의 길 예식에 동참하는) 예루살렘의 여인들 가운데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의 딸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많은 희생자들 중 첫 번째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포기하고 “이탈리아 교도소 투어”를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희망은 의무”라고 강조했다. 

예수님은 세 번째로 넘어지신다. 그리고 어떤 남자도 자신의 삶이 수천 조각으로 산산조각 나면서 쓰러졌다. 그는 자녀들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지 못했고, 감옥에서 할아버지 신세가 됐다. 하지만 그는 내일을 희망한다. “아름다운 건 그 조각들이 아직도 모두 다시 맞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안에서는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빛으로 된 옷을 입다

벌거벗겨진 진리 앞에서 우리는 교양 있는 체 하는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긴 채 달아난다. 제10처는 예수님의 옷을 두고 제비뽑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정시설 교육 봉사자 중 한 사람은 감옥에 들어온 죄수들이 탈의하는 모습을 묵상했다. 예수님은 종종 어떤 경우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저지른 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살핌에 맡겨진 피조물들”을 발가벗기는 것처럼, 여전히 변화 가능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이들을 벌거벗긴다고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분노와 고통과 악의로 가득차” 있음에도 우리가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당신을 알몸으로 만드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제11처에 이르자 고소를 당했지만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은 한 사제의 묵상이 있었다. 사제 역시 유혹을 받을 수 있지만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서야 사제직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못처럼 단단한 말들의 무게와 10년 동안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의 무게, 그리고 삶을 포기하고픈 유혹, 모든 것을 더럽힌다는 수치심 등이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고백했다.

사람이 죄악은 아니다

예수님은 부당한 판결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다. 한 판사는 판결의 경직성이 인간 안에 존재하는 희망을 힘겨운 시험대에 올려놓는다고 묵상했다. 이런 이유로 (한 면이 아닌 다른 면을 보기 위해) 죄라는 행동 외에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 모두 인류의 자녀들이다. 어떤 재소자는 자원봉사자 수도자를 가르친다. 산 사람을 죽은 사람처럼 가두는 감옥에서, 그는 그들을 품에 안고 응답한다. 그들 각각의 기억이 “진흙투성이”더라도, 그 안에 항상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잘못에서 시선을 옮겨 인간을 환대하는 것은 신뢰를 회복하고 선으로 향하는 힘을 되찾는 길이다.

“저희는 당신 옆구리에서 태어난 교회를 당신 아버지께 맡깁니다. 그래서 교회가 실패와 여러 모습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계속 나아가게 하소서.” 

교황은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 기도 마지막인 제14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간호사가 가져온 십자가를 들었다. 묵상은 교도관이 했다. 그는 복역이 끝나고 나와서도 다시 거절당할 수 있으며 스스로 체념한 사람들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님과 함께라면 어떤 죄라도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묵상을 마무리한 고통 가득한 저 말은 희망의 향기가 배어든 말이자 오직 주님 안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새로 태어남으로 열린 말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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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월 2020,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