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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ANSA)

“타인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12일 오전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참행복’에 대한 교리 교육을 이어나갔다. 교황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주님께 청하는 일에 지치지 말라면서, 타인의 삶을 마음에 간직하고,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라고 권고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참행복’에 대한 교리 교육

3.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 5,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참행복’을 살펴보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행복을 살펴봅시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그리스어로 쓰여진 이 복음 말씀에서 두 번째 행복은 수동형이 아닌 능동형 동사, 곧 “그들은 슬퍼한다”로 표현돼 있습니다. 실제로 행복한 사람들은 이 슬픔을 겪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울지만, 마음으로 웁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적 태도이며, 역사상 최초의 은수자들인 사막 교부들은 이를 “펜토스(penthos)”라고 불렀습니다. 곧, 주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여는 내적 고통(슬픔)입니다. 주님과 이웃과의 새로운 관계를 여는 내적 고통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 울음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누군가의 죽음이나 누군가 겪는 고통에 대해 우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은 하느님과 이웃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한 고통으로 마음이 피 흘릴 때 느끼는, 죄에 대한, 자신의 죄에 대해 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 나누거나, 상대방과 깊은 유대를 나눌 정도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인으로 인해 우리가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종종 눈물의 은총에 대해 말했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강조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시노드 후속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Christus Vivit), 76항 참조). 우리가 냉랭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의무나 직무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눈물 흘릴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돌처럼 굳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우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기에, 일깨워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서 일깨워져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는 것은 힘든 길이지만, 모든 인간의 신성하고 대체할 수 없는 삶과 가치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순간 우리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깨닫습니다. 

이 역설적인 행복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곧, 죄에 대한 눈물입니다. 

우선 다음의 것을 식별해야 합니다. 우선, 실수를 해서 화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만심입니다. 반면, 잘못한 일에 대해, 실천하지 못한 선행에 대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배신한 것에 대해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눈물은, 타인의 삶에 마음 쓰는 데서 솟아 나오는, 사랑하지 못한 일에 대한 눈물입니다. 이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가 제대로) 응답하지 못해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실천하지 못한 선행에 대한 생각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식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눈물을 흘릴 때까지 애통해 합니다. 이러한 눈물이 나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시다!

이는 자신의 실수를 직면하는 것에 대한 어렵지만 중요한 주제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새롭고도 훨씬 더 진정한 사랑으로 이끌어준 그의 눈물을 생각해 봅시다. 이는 정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눈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새로워졌습니다. 가엾은 유다와는 달랐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죄를 아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성령의 활동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죄를 알지 못합니다. 죄를 알 수 있도록 우리는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지은 죄나 제가 지을 죄를 알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것은 매우 큰 은총입니다. 이것을 이해한 다음에야 뉘우침의 눈물이 나옵니다.   

초기 은수자 중 한 분인 시리아의 에프렘은 눈물로 씻겨진 얼굴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수덕적 연설』(Discorso Ascetico) 참조). 뉘우침의 아름다움, 눈물의 아름다움, 속죄의 아름다움입니다. 언제나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비 안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랑과 연관된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혜롭고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용서하시고 바로잡아 주시는 하느님의 부드러움이신 성령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용서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용서하십니다. 심지어 가장 추악한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를 청하는데 지칩니다. 우리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려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죄 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시편 103,10)는 분이심을 우리가 항상 명심한다면, 우리는 자비와 자애로움 안에서 살고, 우리 안에 사랑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풍요롭게 사랑하고, 미소와 친밀감과 봉사와 눈물로 사랑하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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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월 2020,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