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뽐내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겸손이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12일 ‘주님 세례 축일’ 삼종기도를 통해 성부의 무한한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한편, 우리가 세례 받은 날을 기념하자고 신자들을 초대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저는 다시금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오늘 세례 받은 유아는 32명입니다. 그 유아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올해의 전례는 우리에게 마태오 복음에 따른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소개합니다(마태 3,13-17 참조). 복음사가는 세례를 청하는 예수님과 세례 베풀기를 거절하는 세례자 요한의 대화를 묘사하며 다음과 같은 대목에 주목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 예수님의 이 결심은 세례자 요한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실 메시아는 정화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정화시키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길이시고, 예상할 수 없는 길이십니다. 하느님은 놀라움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세례자 요한은 그와 예수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깊은 심연 같은 거리가 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마태 3,11)고 말했던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은 인간과 하느님 간의 이러한 간격을 메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완전히 하느님의 편이시라면, 완전히 인간의 편이시기도 합니다. 갈라진 것을 결합시키는 분이십니다. 이 때문에 그분은 세례자 요한에게 이렇게 거듭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 메시아는 세례 받기를 청합니다. 자녀다운 순종을 통해 모든 의로움이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연약하고 죄인인 인간과의 연대의 길을 통해 성부의 계획이 실현되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겸손의 길입니다. 당신 자녀들에게 완전히 가까이 다가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예언자 이사야도 하느님의 종의 의로움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종은 세속의 영과 반대되는 방식을 통해 세상에서 자기 사명을 실현합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42,2-3). 이는 오늘날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요청되는 온유의 태도, 단순함의 태도, 존중의 태도, 검소함과 자신을 숨기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겸손과 온유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태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이지만, 얼마나 많은 주님의 제자가 스스로를 주님의 제자라고 뽐내는지요. 잘난 체하는 제자는 좋은 제자가 아닙니다. 좋은 제자는 겸손하고, 온유한 제자입니다.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선을 행하는 제자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선교활동을 통해 증거하면서,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함께 나누면서, 강요하는 게 아니라 항상 모범을 보이며 타인을 만나러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자마자,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오셨으며, 하늘 높은 곳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예수님의 세례 축일에 우리는 우리의 세례를 다시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드님이신 것처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 역시 사랑 받는 자녀임을 우리는 압니다. 성부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대상이고, 수많은 다른 형제들의 형제이며, 모든 사람에게 성부의 무한한 사랑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위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축일은 우리에게 우리의 세례도 떠올려줍니다. 우리 또한 세례성사를 통해 다시 태어났습니다. 세례성사 때 우리 안에 머무시기 위해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례 받은 날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아도, 우리가 세례 받은 날이 언제인지는 항상 잘 알지 못합니다. 분명히 여러분 중 누군가는 그 날짜를 모를 것입니다. (...) 이는 집에 가서 해야 할 숙제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제가 언제 세례를 받았나요?’ 그리고 세례 받은 날을 매년 마음속으로 기념하십시오. 그렇게 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분이신 주님께 대한 의로운 의무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가 세례성사의 은사를 한층 더 이해하고 매년 세례 받은 날에 일관되게 그 은사를 살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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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월 2020, 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