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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조건 없이 오시며, 받기 위해 주는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에 따라 12월 24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강론을 통해 주님의 사랑은 흥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기에 인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예수님의 “열광적인” 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 교황은 이웃에게 잘해주기 위해 이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교회가 완벽해지길 기다리지 말라고 역설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제1독서의 이 예언이 복음에서 실현되었습니다. 고장에서 목자들이 밤에도 양 떼를 돌보고 있을 때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습니다”(루카 2,9). 어둠이 내린 땅에 하늘에서 빛이 나타났습니다. 어둠을 비추는 이 빛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티토 2,11) 하느님의 은총이 오늘밤 이 세상을 감쌌습니다.

이 은총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삶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새롭게 하며, 악에서 해방시키고, 평화와 기쁨을 심어주는 사랑입니다. 오늘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우리의 사랑을 받으시려 작아지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포옹할 수 있도록 아기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은총’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완전히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받기 위해 주는 논리’에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거저 오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흥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을 누릴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결코 그 사랑에 보답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오늘밤 우리는 우리가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작아지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일로 분주할 때도 그분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심지어 가장 나쁜 사람들까지도 계속해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그분께서는 오늘 저에게, 여러분에게,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언제나 너를 사랑할 것이다. 너는 내 눈에 소중하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잘 행동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그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릇된 생각을 할 수 있고, 온갖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가 착하면 하느님께서 선하시다고, 우리가 악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벌하신다고 생각하는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온갖 죄 안에서도 우리를 계속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충실하고 오래 참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찾은 선물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절대적 무상성, 절대적 자애심을 놀라움으로 발견합니다. 그분의 영광은 우리를 현란하게 하지 않으며, 그분의 현존은 우리를 겁주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사랑의 풍요로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얻으시려 완전한 가난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은총은 아름다움과 동의어입니다. 오늘밤,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 안에서 우리의 아름다움도 재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우리는 하느님의 눈에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지울 수 없고 해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곧 우리 존재의 핵심인 억누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 인성을 사랑으로 취하시어 당신 것으로 삼으시고, 영원한 “혼인으로” 맺으십니다. 우리에게 이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십니다.

진정 오늘밤 목자들에게 선포된 “큰 기쁨”은 사실 “온 백성의 것”입니다. 분명 성인(聖人)들이 아니었던 그 목자들처럼, 우리 역시 연약함과 허물들을 갖고 그곳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목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도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삶의 어두운 밤에 목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2,10). 용기를 내십시오. 신뢰를 잃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밤 사랑이 두려움을 이겼고,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습니다. 하느님의 온화한 빛이 인간의 교만의 어둠을 이겼습니다. 인류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은총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이 은총을 받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을 찾으러 나서기 전에, 우리를 먼저 찾으시는 그분께서 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내어 맡깁시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은총에서 시작합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의 온유한 사랑(tenerezza)이 우리를 감쌀 수 있도록 우리를 내어 맡깁시다. 그분께서 사랑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을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잘못되든, 교회가 잘못되어 돌아가든, 세상의 일이 잘 되지 않든 간에, 더 이상 변명거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열광적인 사랑 앞에서, 온전히 온유하고 친밀감 있는 사랑 앞에서는, 우리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며 던질 물음은 이것입니다. “나는 하느님께 사랑 받기 위해 나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있는가? 나를 구원하러 오시는 그분의 사랑에 나 자신을 내어 맡기는가?”

이토록 위대한 선물은 감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이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감사를 소홀히 하며 살아갑니다. 오늘은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해, 감실과 성탄 구유와 여물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좋은 날입니다. 선물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런 다음 예수님과 같은 선물이 됩시다. 선물이 된다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남들을 바꾸려 들지 않고, 우리의 삶을 선물로 내어 놓으며, 우리 자신을 바꾸기 시작할 때, 우리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역사가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밤 우리에게 그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를 강요하거나 말의 힘으로 역사를 바꾸지 않으셨으며, 당신의 생명의 선물로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기까지 기다리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거저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 그들이 좋은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맙시다.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교회가 완벽해지길 기다리지 맙시다.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 다른 이들이 우리를 존중하길 기다리지 맙시다. 우리가 시작합시다. 이것이 바로 은총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룩함(성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무상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한 아름다운 전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목자들은 다양한 예물을 들고 마구간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을 가지고 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노동의 결실을, 어떤 이들은 귀중한 물건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이 관대함으로 (자신들의 예물을 아기 예수님께) 바칠 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목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했기에 아무것도 바칠 게 없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서로 다투어 예물을 바칠 때, 그는 창피해하면서 한쪽 구석에 서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요셉 성인과 성모님은 너무 많은 선물들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던 성모님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성모님은 그 목자가 빈손으로 서있는 모습을 보고, 그를 가까이 불렀습니다. 그런 다음, 아기 예수님을 그의 팔에 안겨주었습니다. 그 목자는 자신의 손에 아기 예수님을 받은 후, 자신에게 합당치 않은 것을 받았다는 것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목자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항상 텅 비어 있던 자신의 손은 이제 하느님의 요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다른 이들에게 아기 예수님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큰 선물을 자신만을 위해 간직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의 손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렇다면 오늘밤은 여러분을 위한 밤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비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성탄의 빛이 여러분 안에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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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2월 2019,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