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생명이 없는 곳에 이기주의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이날 전례의 복음 구절과 부활에 대해 설명했다. 교황은 지상의 차원이 유일하지 않다면서 저 세상의 차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사랑하신다며, “참된 관계와 신뢰가 충실히 결속”하는 데서 생명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루카 20,27-38 참조)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을 소개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가이 몇 사람에게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은 함정 있는 질문으로 그분을 도발했습니다. 자식 없이 죽어간 형제들을 차례로 일곱 남편으로 맞이했던 여인은 부활 때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덫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 세상에서 부활한 이들이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5-3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응대하셨던 겁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상대방을,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적인 차원을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충분히 드러내고, 또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다른 차원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죽음을 넘어선 삶에 대한 예수님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말씀을 듣는 것이 큰 위안과 희망을 안겨줍니다. 특히 우주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는 지혜가 매우 빈약한 우리시대에서, 우리는 이러한 위안과 희망이 많이 필요합니다.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이 같은 명쾌한 확신은 전적으로 생명의 하느님이신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사두가이의 질문 이면에는 아주 심오한 질문이 감춰져 있습니다. 일곱 남편의 과부인 여인이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뿐 아니라, 그녀의 삶이 누구의 소유가 되느냐는 질문입니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의혹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지상의 순례가 끝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됩니까? 죽음이나 허무에 속하게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속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이름을 우리의 이름과 연결시키실 정도로 우리를 매우 염려하십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37-38). 관계, 친교, 형제애가 있는 곳에 생명이 존재합니다. 참된 관계와 충실한 결속 위에 성립될 때 생명은 죽음보다 더 강합니다. 반대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속하고 무인도처럼 살아간다고 주장하는 곳에선 생명이 없습니다. 이런 태도에는 죽음이 득세합니다. 이기주의입니다. 내가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내 마음속에 죽음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백하는 내용으로 매일을 살아가도록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도와주시길 빕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저 세상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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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월 2019,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