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찬례는 무관심, 교만, 돈벌이 욕심에 맞서는 해독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3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아 카살 베르토네에 있는 위로자이신 성모 마리아 성당 앞 광장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성찬례는 하느님의 사고방식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며, 좌절, 교만, 무관심에 맞서는 해독제입니다.” 교황은 카살 베르토네 거리를 지나는 긴 성체행렬을 마친 후, 이같이 말하며 강복했다.

Cecilia Seppia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가운데 시내의 거리를 지나는 성체행렬을 거행하기 위해 로마 외곽 지역을 선택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에는 오스티아의 성녀 모니카 성당이었고, 올해는 로마 동부 지역에 위치한 카살 베르토네의 위로자이신 성모 마리아 성당이었다. 그 예식은 모두에게 하느님의 현존의 표징이 됐다. 어린이들과 노인들은 행렬의 맨 앞에 섰다. 인도에 서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혹은 발코니에서 얼굴을 내민 채로 성체행렬에 동참한 이들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 도시에 폭격이 가해진 역사와 연관된 이 장소에 지난 75년 동안 방문했던 교황들 중 네 번째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루만짐만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타락과 방치로 인해 종종 상처를 입었던 도시에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그리고 성찬례가 발산하는 사랑이 넘쳐흐르게 된 것이다.

축복하는 법을 배웁시다

축복의 학교는 하느님의 사고방식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몸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그 빵에 교회의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교황에게 성찬례는 악, 경멸, 교만, 무관심에 맞서는 해독제다. 또 “죄송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요, 도와드릴 수가 없군요,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온갖 태도에 맞서는 해독제다. 강론은 이날 전례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동사에 초점을 맞췄다. 곧 ‘말하다(dire)’와 ‘주다(dare)’라는 동사다. 제1독서에서 멜키체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아브라함 안에서 지상의 모든 가족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를 많게 하시기 전에 빵을 ‘축복’하셨고, 군중을 위한 음식으로 변화시키셨다. 우리 또한 세례를 받은 날 ‘축복’을 받았고, 매 미사의 말미에 ‘강복’을 받으며, 우리가 ‘좋은 말’을 들을 때마다 ‘축복’을 받는다. 교황은 축복하는 것은 말을 선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축복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좋게 말하는 것, 사랑을 담아 말하는 겁니다.”

교만으로 전염되지 맙시다

교황은 사목자들과 사제들을 향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백성을 항상 축복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권고했다. 

“축복 받은 이들로서 우리는 동일한 사랑의 기름부음(unzione, 塗油)을 통해 타인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오늘날 너무도 쉽게 악담하고, 경멸하며, 모욕하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지나친 광기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합니다. 종종 불행하게도 더 많이 더 강하게 소리치는 사람, 더 많이 화내는 사람이 옳으며 또 공감을 얻는 듯이 보입니다. 온갖 달콤함을 지닌 빵(성체)을 먹는 우리는 교만으로 전염되거나 좌절에 휩싸이지 말아야 합니다.”

교황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느님 백성은 칭찬을 좋아하고, 불평하며 살지 않습니다. 불평 때문이 아니라, 축복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축복하고 우리의 지난 과거를 저주하지 않으며, 좋은 말을 하는 법을 배우면서, 성향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말에서는 항상 선이 폭포처럼 솟아납니다.”

복음의 경제 “작은 것도 내어 주십시오”

교황은 ‘말하는 것(dire)’에 ‘주는 것(dare)’이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는 것은 복음이 말하는 경제의 기본이다. 군중을 배 불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많게 하신 그 빵은 사실 단순히 소모품만이 아니라 나눔의 방식이다. 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마술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신뢰의 결과다.

“세상에서는 항상 이익을 증가시키고 매출을 높이려고 애씁니다. (...)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주기 위해서입니까? 갖기 위해서입니까? 나누기 위해서입니까? 쌓아놓기 위해서입니까? 복음의 ‘경제(economia)’는 나누면서 많아지고, 나눠주면서 양육되는 것입니다. 소수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찬례는 무관심에 맞서는 해독제

교황은 이것이 제자들이 다르게 반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논리에서는 많든 적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오직 내어줄 때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만드십니다. 그분께서는 화려한 동작으로 기적을 완수하시지 않고, 보잘것없는 것들로, 당신 손으로 떼어서 주고, 배분하면서, 나누면서, 기적을 이루십니다. 하느님의 권능은 오직 사랑으로 이루어진, 겸손한 권능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작은 것을 위대한 것이 되게 합니다. 성찬례는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곧 빵 한 조각 안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단순하고 본질적인, 쪼개지고 나누어진 빵, 우리가 모시는 성체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고방식을 전해줍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도록 이끕니다. ‘죄송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에 맞서는 해독제요, ‘저는 시간이 없어요, 도와드릴 수가 없군요,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에 맞서는 해독제요, 다른 편에서 바라보는 것에 맞서는 해독제입니다.”

도시를 위한 축복과 선물이 될 것

교황은 우리 각자가 자신을 내어주신 성체와 성혈, 곧 성찬례에 의해, 그 빵(성체)에 의해 뒷받침되며, 생명을 걸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마무리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구역의 거리에 도달되기 때문에, “타락과 방치를 겪으며,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자신의 도시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내어주도록 부르심 받은 것이다.

“수많은 독거 노인들, 어려움에 처한 가족들, 빵을 얻고 꿈을 키우려고 애쓰는 젊은이들 앞에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조금 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서만 가지고 있지 않고, 만일 위험을 무릅쓴다면, 여러분의 그 보잘것없는 것이 예수님의 눈에는 아주 많은 것입니다. (...)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말을 하시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우리의 거리로 오십니다. 축복과 선물이 되기를 우리에게도 청하십니다.”

미사 말미에 로마 교구 총 대리 안젤로 데 도나티스(Angelo De Donatis) 추기경이 인도한 긴 성체행렬은 시편과 성가를 부르며 “로마 6” 경기장까지 이어졌다. 그곳에는 다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성체를 모시려고 기도를 바치며 모여 있었다. 성광을 올려다보고 있는 신자들에게 교황은 흰색 카파를 입고 강복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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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6월 2019, 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