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 (자료사진)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 (자료사진) 

피시켈라 대주교, 주님을 위한 24시간… “용서는 사랑의 표징”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요 일반알현의 말미에서 이틀 뒤에 있을 “주님을 위한 24시간”을 언급했다.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Barbara Castelli / 번역 이정숙

“우리 교회 또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용서의 성사(고해성사)를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 특별한 때에 오랫동안 열려 있다면 많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반알현의 말미에 이탈리아어 언어권 순례자들을 위한 인사말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3월 29일 금요일 오후 5시 화해의 전례와 함께 열리게 될 행사이자 이제는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주님을 위한 24시간”에 대해 말했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이 기도와 묵상의 행사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라는 요한 복음의 말씀을 모토로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가 주최한다.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Rino Fisichella) 대주교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재판관을 마주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환대하고 위로하고 새로워지기 위한 길을 가르쳐주시는 아버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용서는 사랑의 정점

이날은 성체조배, 묵상, 개인의 회심으로 초대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은총과 새로운 삶의 기회로 끝없는 자비를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도록 제안한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세상에는 “용서가 필요하다”며 “왜냐하면 용서가 사랑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용서의 측면을 갖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의 측면도 적게” 올 것인데, 그것은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의회 웹사이트를 통해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폴란드어로 “주님을 위한 24시간”을 거행하기 위한 사목 보조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이하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주님을 위한 24시간”이 여섯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올해 모토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입니다. 올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구조는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침묵과 기도 안에서 성체조배하는 심오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하느님의 자비를 개인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인 고해성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는 주님 앞에서 그 누구도 재판관을 마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환대하고 위로하고 또한 그에게 새로워지기 위한 길을 가르쳐주시는 아버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년에는 교도소에서도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정말로 하느님의 자비를 발견하고, 또한 재발견하기 위한 세계적인 행사입니까? 오늘날 세계는 용서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용서는 사랑의 표징이기 때문에 항상 용서가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의 측면을 갖지 않는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랑의 측면 또한 적게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결국 용서받고,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용서는 사랑의 정점입니다. 사랑할 때는 자신의 잘못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일치와 완전하고 깊은 관계의 삶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한 24시간’은 바로 이를 증명합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이 행사에 우리와 함께하려는 원의가 도달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호주, 라틴 아메리카, 멕시코, 유럽 등 최근에는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서도 문의가 왔습니다. 교도소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주님을 위한 24시간’에 동참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계가 없고 끝을 모르는 진정한 자비를 만나기 위해 기름 얼룩처럼 확대되고 넓어지는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자비의 희년 후속 교황 교서 「자비와 비참」(Misericordia et misera)에서 화해의 성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심이 되는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화해의 성사를 잊어버릴 때, 우리는 또한 우리 인간성의 일부를 잊게 되며 우리 자신도 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사목, 그러니까 우리 공동체, 우리 본당, 교회의 모든 현실에 대한 삶의 중심에 화해의 성사를 둔다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복음 메시지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중심은 ‘회심하고 믿으십시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삶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이 항상 하느님 사랑의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희년이 있은 지 올해로 3년째입니다. 교황님께서 명시적으로 원하셨던 몇 달 동안의 몇 가지 결과를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자비라는 주제는 우리가 쓰는 말에서 일반적일 뿐 아니라 분명 자비의 영성이 사목 안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이 기회를 살려 내년 2020년에는 (남태평양) 사모아에서 ‘자비의 세계대회(Congresso mondiale della misericordia)’가 열릴 것입니다. (거기서) 자비는 인간이 필요로 하며 교회와 전 세계도 자비를 필요로 하는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자비에 대한 주제를 오해하지 않으려면, 자비가 정의라는 주제와 대립되는 게 아니라 정의를 자비 안에서 통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비가) 첫 단계이자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통합합니다. 정의가 곧 위로, 참여, 격려, 용서가 되도록 말입니다.”

27 3월 2019, 1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