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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결코 우리를 잊으실 수 없으므로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교황은 수요 일반알현 중에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여정을 이어 나가면서, 역경으로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모든 우리의 사랑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모두를 위한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항상 있다고 말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7.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결코 우리를 잊으실 수 없으므로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2월 20일 수요일) 행한 일반알현은 두 장소에서 진행됩니다. 이곳(바오로 6세 홀)에 오기 전에 저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인 베네벤토대교구 신자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여러분과 함께입니다. 이처럼 두 장소에서 일반알현이 이루어진 것은 여러분이 감기에 들지 않기를 바라는 교황궁내원(Prefettura della Casa Pontificia)의 배려 때문입니다. 이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애쓴 교황궁내원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을 계속 이어 나갑시다. 모든 그리스도교 기도의 첫 번째 단계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부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앵무새들처럼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인식 하에, 여러분이 신비 안으로 들어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신비를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어느 정도 우리의 아버지이신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어느 정도 “정제하고”, 정화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음의 정화는 우리의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역사 안에서 형성되어 왔고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상이나 어머니상과 관련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779 항).

우리 중 그 누구도 완벽한 부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완전한 부모나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결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랑의 관계를 항상 우리의 한계와 또한 우리의 이기주의의 표식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소유하려거나 조작하려는 욕구로 오염돼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때때로 사랑의 선언이 분노와 적대감의 감정으로 변하곤 합니다. “웬일이니, 저 두 사람은 지난 주만 해도 서로 그렇게 사랑하더니 오늘은 죽을 만큼 미워하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매일 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좋지 않은 쓰디쓴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때로는 그것들이 밖으로 나가서 해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말할 때, 특히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면, 그들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권고하신 표현에 따르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불완전한 방법으로나마 맛볼 수 있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모든 남녀들은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의 영원한 가난뱅이들이며, 우리도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의 영원한 가난뱅이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결국 그들은 사랑 받을 곳을 찾아 헤매지만 찾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안에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많은 실망이 있습니다. 그럼요,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안에서 사랑의 신은 가장 비극적인 존재입니다. 그가 천사와 같은 존재인지 아니면 악마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신화는 그가 포로스(Poros, 교활함/술책)와 페니아(Penía, 결핍)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곧, 자신의 부모와 같은 모습을 지녀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교활함과 결핍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사랑의 모순적인 성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시간 만에 꽃처럼 피어 오르고 맹렬하게 살 수 있지만, 곧바로 시들고 소멸하는 사랑입니다. 붙잡으려 하지만 항상 빠져 나가는 사랑입니다(플라톤, 『향연』(Simposio), 203항 참조). 예언자 호세아는 우리 사랑의 선천적 약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냉철하게 표현합니다. “너희의 신의(사랑)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호세 6,4). 우리의 사랑은 자주 이렇습니다. 곧, 유지하기 어려운 약속이며, 곧바로 건조되고 증발해 버리는 노력이며, 아침에 나온 태양이 밤 이슬을 말려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종종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약하고 간헐적으로 사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없어지거나 약해졌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우리 힘의 빈곤과 더불어 한계에 부딪힙니다. 은혜로운 날에는 실천하기 쉬워 보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베드로 사도 조차도 두려워 도망쳐야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예수님의 사랑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넘어뜨리는 이러한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 삶의 첫날부터 찾던 보물을 완전히 찾을 수 없는 위험에 놓인 가난뱅이들입니다. 그 보물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랑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모두가 이 사랑의 수령자라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비록 역사에는 가설이 없지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도 한 적이 없으며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이사 49,15-16). 오늘날에는 문신이 유행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자식을) 잊지않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사랑이 무너지고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항상 우리 모두를 위한 열렬하고 유일하며 충실한 하느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사랑에 대한 이 굶주림 속에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굶주림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인식하라는 초대입니다. 예를 들어,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심은 다음의 능선을 통과했습니다. 젊고 똑똑한 이 수사학자는 그 어떤 피조물도 자신에게 줄 수 없는 무엇을 찾아 헤맸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는 바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그 날, 하느님을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에”라는 표현은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근본적인 다름과 지칠 줄 모르는 사랑, 늘 남아 있는 사랑, 항상 손 닿는 곳에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차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 사랑이 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역경 중에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을 잊어버리고, 여러분이 아버지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체험은 여러분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곧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느님의 열렬한 사랑의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0 2월 2019,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