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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파나마 에이즈 환자 찾은 교황, “여기서는 죽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파나마를 떠나기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한 재단이 인간적이고 영적인 도움과 치료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시설인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을 방문해 삼종기도 연설을 했다. 교황은 1월 27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존경하는 책임자, 협력자, 사목자, 친구 여러분!

도밍고 신부님, 모두의 이름으로 저에게 하신 말씀에 감사합니다. 저는 이곳 “착한 사마리아인” 그룹홈(Casa-famiglia, 공동생활가정)에 있는 여러분과 “요한 바오로2세” 센터, 사랑의 자매회의 “성 요셉” 그룹홈, 예수의꽃동네형제회 “사랑의 집”에서 지내고 있는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이 만남을 열망했습니다. 여러분과 머무는 것은 제게 희망을 쇄신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만남을 준비하며 저는 이 공동체의 한 회원의 증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가) “여기서 저는 새로 태어났습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는, 그리고 여러분이 대표하고 있는 모든 센터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시는 새로운 삶의 표지입니다.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고, 희망을 갖게 하며, 믿도록 격려하면서 행동하는 것을 보는 것을 통해 몇몇 형제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하는 것은 쉽습니다. 여기서 여러분 공동체의 “최고 수혜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만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교회와 신앙이 태어나고, 여기서 교회와 신앙이 사랑을 통해서 계속해서 쇄신됩니다.

도밍고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많은 의미가 있지만, 또한 다른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보기 위한 눈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실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다른 이들을 이웃으로 보는 것입니다.

복음은 언젠가 (율법교사가) 예수님에게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고 물었다고 말해줍니다. 그분께서는 이론으로 답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멋지고 고상한 설교를 행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비유를, 여러분 모두 잘 알고 있고, 아주 잘 살고 있는 실제적 삶의 구체적인 사례인, 그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웃이란 우리의 여정 중에 만나는 사람, 얼굴입니다. 그 얼굴로부터 우리는 변화되고 감명을 받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위치와 공간으로 삼기 위해, 우리의 계획과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며, 그런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의해 내면적으로 감동하는 것입니다. 강도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줄 용기가 없었던 사제와 레위인의 무관심에 의해서도, 길가에 반죽음 상태로 버려진 사람 앞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은 이같이 그 사람을 (이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무관심은 사람을 죽이고, 상처를 입히며, 죽게 만듭니다. 어떤 이들은 돈 때문에, 어떤 이들은 더럽혀지는 두려움 때문에, 경멸이나 사회적 혐오 때문에, 아무 문제 의식 없이 그 사람을 오랫동안 길에 내버려뒀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공동체처럼, 착한 사마리아인은 이웃이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무시하고 지나쳐 가버릴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수없이 고통을 겪고 무시당하는 우리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얼굴입니다.

이웃은 (우리의) 삶을 때때로 불편하게 하지만 행복하게 만드는 얼굴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떠올리게 해주고, 우리를 길 위에 나서도록 하며, 통속적인 것과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추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내는 것은 집을 만들고, 공동체를 조성하며 예언하는 능력을 지닌 교회의 조용하지만 어머니다운 얼굴을 만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얼굴은 일반적으로 볼 수 없고 주의를 끌지도 않고 스쳐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구체적인 자비와 따뜻한 애정의 표지요, 우리의 삶에서 오늘 행동하는 부활의 기쁜 소식의 생생한 표지입니다.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가족을 이루는 것입니다. 유익하거나 기능적인 연결을 넘어서서 다른 이들과 일치되고, 더 인간적인 삶을 느끼도록 일치되어 있다고 느끼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예언이 구체화되고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날들이 잘 대접받고, 관심을 받으며 익명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단순하고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 구성되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하나의 공동체는 모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각자가 그 건축에서 필요한 돌이기 때문에, 아무도 무관심하거나 이방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지는 법을 배우고, 서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은총을 주시도록 주님에게 청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매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배우는 은총을 말입니다. 몇 번이나 용서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까? 일흔일곱 번, 필요한 만큼 매번 (용서해야 합니다). 강력한 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매일 인내와 용서를 키우는 신뢰를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여기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경험하는 기적이 실현됩니다. 더 인간적이고, 따라서, 더 신적인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하느님의 어루만짐이 효과가 있다고 느끼도록, 여기서 우리 모두는 태어납니다.

여러분 모두의 모범과 관대함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단체에, 자원봉사자들과 은인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고 이웃으로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이 한층 더 구체적이고, 더 실제적이 되도록 가능하게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삼종기도를 바치며, 여러분을 우리의 어머니, 동정녀에게 맡깁니다. 착한 어머니처럼 따뜻한 애정과 가까이 다가감의 전문가요, 누가 우리의 이웃인지 매일 발견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우리를 가르치시고, 형제들의 사랑과 보호를 찾을 수 있도록 집(혹은 공동체)과 환대를 (이웃에게) 제공해주고 즉각적으로 만나러 갈 용기를 우리에게 북돋아 주시는 전문가이신 성모님께 전구합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연관된 사명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모든 근심, 모든 필요, 여러분 안에 지니고 있는 고통, 여러분이 겪은 상처를 그분의 망토 아래 두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하여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분의 모성애를 통해, 그분의 따듯한 애정, 그분의 어머니다운 미소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를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27 1월 2019,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