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종기도 삼종기도 

“자신의 삶에 갇힌 채 고립되지 마십시오”

“자기 중심적인 삶에 억눌리지 맙시다. 오직 무엇을 사야 할지에 대해서만 열중하면서, 성탄을 세속적인 축제로 지내지 맙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2일 대림 제1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이같이 당부했다. 아울러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시리아를 기억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에게 성탄을 준비시키고,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눈을 들어올리도록 초대하는 전례시기인 대림시기가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대림시기에 우리는 단순히 성탄을 기다리는 것으로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용기 있고 일관된 선택을 통해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때에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성탄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다시 오심을 기다릴 뿐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그날, 우리의 개인적인 만남도 기다리도록 합시다. 대림4주간 동안 우리는 습관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그리고 희망을 키우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한 꿈을 키우면서 그로부터 벗어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번 주일 복음(루카 21,25-28.34-36 참조)은 이런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며, 우리로 하여금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이나 혹은 일상의 요란한 리듬에 억눌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해줍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예리한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 늘 깨어 기도하여라”(34-36절).

“깨어 기도하여라(Stare svegli e pregare).” 바로 이 말씀이 오늘부터 성탄까지, 이 대림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내면의 잠은 늘 우리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것에서부터 생깁니다. 자신의 문제, 자신의 기쁨과 자신의 고통과 더불어 자신의 삶에 갇힌 채 고립되는 것에서 생깁니다. 항상 우리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싫증나게 하며 희망을 가로막습니다. 여기서 복음이 말하고 있는 게으름과 무기력의 뿌리를 찾게 됩니다. 대림시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바깥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과 형제들의 요구와 새 세상의 열망에 마음을 열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넓히며 깨어 있으라는 의무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 열망은) 기근, 불의, 전쟁으로부터 고통 받는 수많은 민족들의 열망이요, 가난한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 소외된 이들의 열망입니다. 이 시기는 우리의 마음을 열기 위한 기회요, 어떻게 (살지) 그리고 우리의 삶을 누구를 위해 쓸지에 관해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기회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를 잘 살기 위한 두 번째 자세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루카 복음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28절)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을, 오고 계신 예수님을 향하도록 하면서, 일어서서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기다릴 때 우리는 일어서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으며, 깨어 있음과 긴밀히 연결된, 기도 안에서 그분을 기다리기를 원합니다. 기도해야 하고, 예수님을 기다려야 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개방해야 하며, 깨어 있어야 하고, 우리 자신 안에 갇혀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소비주의의 분위기 안에서 성탄을 생각하고,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기 위해 무엇을 살 수 있는 데에만 열중하는 분위기에서 성탄을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스쳐 지나가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고, 깨어 있음과 긴밀히 연결된, 기도 안에서 그분을 기다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기다림의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성경에서는, 무엇보다 예언자의 목소리가 이를 알려줍니다.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소리는 유배로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백성이기도 하지만, 세속화되고 우리의 정체성을 잃을 위험을 무릅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삶의 양식을 “이교화(paganizzare)”시킬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예언자가 우리에게 선포하는 다음과 같은 하느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예레 33,14-15). 그리고 그 정의의 싹은 바로 예수님이시고,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자 오고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기다림과 기도의 여인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예수님께 이끌어주시고,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의 약속 안에서 우리의 희망을 강화시키도록 도와 주시며, 역사의 모진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항상 충실하시며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시기 위해 인간적인 잘못들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02 12월 2018,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