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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예수님께서는 약자를 억압하는 사람의 가면을 벗기시며,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중 제32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주님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겸손하고 너그러운” 제물로 봉헌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11월 10일 토요일 바르셀로나에서 시복된 올모의 테오도로 이엘라(Teodoro Illera del Olmo) 신부와 15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다음 주일에 예정된) 제2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예고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 사화(마르 12,38-44 참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끝맺으면서, 두 인물을 대조시키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곧, 율법학자와 과부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두 인물이 대조됩니까? 율법학자는 중요인사들, 부자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반면) 다른 인물, 곧 과부는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약자들을 대변합니다. 사실,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단호한 심판은 그들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스스로 “랍비”, 곧 스승이라는 직함을 붙이면서 인사 받기를 즐기고 윗자리를 즐기는(38-39절 참조)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더 나쁜 경우는, 그들의 과시가 무엇보다 종교적인 본성에 속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40절) 하고, 하느님 율법의 수호자로서 신임을 얻기 위해 하느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우월주의적이며 허영심 가득한 이런 태도는 그들을, 곧 과부들과 같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지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으로 이끕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악한 메커니즘의 가면을 벗기십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 계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며, 종교적 이유를 바탕으로, 도구적으로 약자들에게 가해진 억압을 나무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정신 안에 이 가르침을 깊이 새기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한 가지 생생한 사례를 제시하십니다. 곧, 가난한 과부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사회적 지위는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녀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남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체 없이, 쉽사리 어떤 채권자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이 채권자는 돈을 받아낼 때까지 약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에게 남아있던, 자신의 전부였던 동전 두 닢을 성전 헌금함에 넣으려고 나갔습니다. 여인은 거의 부끄러워하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지나가려고 애쓰면서 봉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겸손을 통해 이 여인은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의미를 지닌 위대한 행동을 수행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희생으로 충만한 그 행동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의 행동 안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가르치길 원하셨던 전적인 자기 증여가 빛나는 것을 보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가르침은 우리의 삶에서 본질적인 것을 회복하도록 우리를 도와주며 하느님과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관계를 도와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저울은 우리의 저울과 다릅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행동을 다르게 측량하십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양이 아니라 질로 측량하십니다. 마음을 꿰뚫어보시며, 순수한 의도를 바라보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할 때 “주는 것”과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때 “주는 것”이 항상 의식주의와 형식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계산적인 논리에서도 벗어나야 하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거저 베풂(gratuità)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조건 없이(gratuitamente) 구원하셨으며, 우리에게 구원의 값을 치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무상으로(gratuitamente)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저 베풂(gratuità)의 표현으로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그 가난하고 관대한 과부를 그리스도인이 본받아야 할 삶의 모델로 언급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 과부의 이름도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우리는 분명히 그녀를 하늘나라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인사하러 갈 것입니다). 그리고 (과부의 그 마음은) 하느님 앞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할 때, 우리의 이타주의의 행동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유혹 받을 때, 우리가 다른 이들의 시선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질 때, 그리고 우리가 -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 “겉치레꾼들(i pavoni)”이 될 때, 이 여인을 생각합시다.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주신 가난한 여인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남는 것으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겸손하고 너그러운 제물로 주님과 형제들에게 내어줄 때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11 11월 2018,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