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 겪는 이들 위해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3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코로나19 판데믹 때문에 발생한 경제 위기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지 못해 문제를 떠안게 된 가족들을 기억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이 시기에 믿음, 인내, 용기를 갖고 굳건히 기도하자고 초대했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던 첫마디는 ‘믿음’이라는 단어였다. 이 말은 (이날 전례의) 입당송에도 나온다. “저는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가련한 저를 굽어보시니,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시편 31[30],7-8). 이어 교황은 코로나19 판데믹(세계 대유행)이 야기한 경제 위기로 노동활동이 가로막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오늘은 코로나19 판데믹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러한 상황에선 일을 할 수 없고 그로 인해 가족에게 모든 부담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강론에서 왕실 관리의 아들을 치료한 사화를 소개하는 요한 복음(요한 4,43-54 참조)을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이 시기에 믿음, 인내, 용기를 갖고 기도하자고 초대했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이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건강을 청했습니다(요한 4,43-54 참조). 그런데 주님께서는 모든 이를 책망하셨습니다. 그 아버지를 포함해서 말이죠.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48). 왕실 관리였던 그 아버지는 입을 다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4,49).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50).

“참된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믿음’입니다. ‘너희가 믿지 않는다면, (...)’ 많은 경우 기도를 입으로만 바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게 아니라 약한 믿음입니다. (...) 벙어리 영이 들린 아들의 아버지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예수님의 이 대답에) 그 아버지가 어떻게 분명하게 말했는지 생각해봅시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3-24 참조). 이것이 기도 안에서 갖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경배의 장소) 바깥에서 기도할 때나, 이곳 성당에 올 때나, 우리가 믿음을 갖고 기도한다면 주님께서 늘 그곳에 계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합니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기도합니까? 기도 중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주님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것,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주님과 내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참된 기도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믿음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인내’입니다. 어떤 이들은 청하긴 하지만 은총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인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 깊은 데서 필요한 것을 청한 게 아니거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몸소 우리에게 한밤중에 빵을 청하러 가까운 벗에게 가는 사람의 비유를 가르쳐주십니다. 문을 두드리는 인내에 관한 비유입니다(루카 11,5-8 참조). 혹은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에 관한 비유도 있습니다. 과부는 청하고, 졸라댑니다. 귀찮게 졸라댑니다. 이런 것이 인내입니다(루카 18,1-8 참조). 믿음과 인내는 함께 갑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이 청하는 것을 주시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라고 하신다면,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십시오. 마침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총을 주실 겁니다. 만약 주님께서 그러한 은총을 주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느님 당신을 더 애타게 하도록 만들거나 혹은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말하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기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앵무새처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꾸짖으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태 6,7). 이런 게 아닙니다. 기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도 안에서 원하시는 세 번째 조건은 ‘용기’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기도하고 머물기 위해 용기가 왜 필요한가?’ 필요합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청하고 계속 나아가면서, 주님 앞에 머물 용기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이단을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마치 주님을 협박할 정도의 용기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쓸어버리려 하셨을 때, 그리고 모세를 다른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려 하셨을 때, 하느님 앞에서 모세가 보였던 그 용기처럼 말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이 백성과 함께 하겠습니다’(탈출 32,7-14 참조). 용기입니다. 소돔의 구원을 위해 협상할 때 아브라함이 보인 용기도 있습니다. ‘혹시 그곳에서 의인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창세 18,22-33 참조). 거기에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용기의 덕목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요! 그저 사도직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도를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황은 영성체 후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을 바치고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으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교황이 바친 영적 영성체 기도문. 

 

오, 나의 예수님, 

당신의 발아래 엎드려

당신의 거룩한 현존의 심연 안에서 

하찮은 저의 마음과

통회하는 저의 마음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 사랑의 성체 안에서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제 마음은 

당신께 드리는 초라한 거처 안에서 

당신을 영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성체를 

직접 영할 수 있는 기쁨을 기다리며

영적으로나마 당신을 모시길 원하오니, 

오, 나의 예수님,

제가 당신께 갈 수 있도록 

저에게 오소서. 

당신의 사랑이 

삶과 죽음을 통해 

저의 온 존재를 불타오르게 하소서.

당신을 믿고 

당신께 희망을 걸고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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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월 20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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