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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대함이 마음을 넓힙니다. 소비주의를 주의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6일 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통해 아량으로 이끌어주는 관대함에 관한 이날 복음 말씀에서 강론을 시작했다. 이와는 반대로 관대함의 원수는 소비주의다.

Debora Donnini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6일 월요일 아침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에서 “사소한 것”을 통해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어떻게 더 너그러워질 수 있는지 자문해보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관대함의 원수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것, 곧 소비주의라고 경고했다. 이와는 반대로 관대함(generosità)은 마음을 넓혀주고 아량(magnanimità)으로 이끈다. 교황은 예수님이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수없이 대조시키셨다며,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 참조)나 부자청년의 비유(루카 18,18-27 참조)를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대조를 통해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마태 19,23).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 수도 있겠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말씀하실 때 (재물의) 부(富) 이면에 항상 악한 영, 곧 세상의 주인(signore del mondo)이 있었음을 아셨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관대함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서 생깁니다

이날 복음 구절(루카 21,1-4)에서도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과 렙톤 두 닢을 넣는 가난한 과부 사이에서 대조가 나타난다. 이 부자들은 (인색한) 부자와는 다르다. 교황은 (이 부자들이) “악한 자들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성전에 가서 예물을 올리는 좋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전혀) 다른 대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부가 “생계를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놓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내놓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무언가 다른 사항을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셨다. 가장 가난한 자들에 대해 말할 때면 (언제나) 그들을 언급했을 정도로, “과부, 고아와 이민자, 외국인은 이스라엘의 삶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이었다”고 교황은 상기했다. 하느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조금 갖고 있던 전부를 내놓았던” 이 여인은 참행복(Beatitudini)의 여인이었고, 매우 관대한 여인이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주님이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소중했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습니다. 이 복음 구절의 메시지는 관대함에 대한 초대입니다.”

선(善)을 행하는데 몰두할 것

세상 안에 (만연한) 빈곤의 통계를 접할 때, 먹을 것이 없고 의약품이 없어서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접할 때, 매일 신문과 TV뉴스를 통해 수많은 가난을 접할 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고 자문하는 것은 좋은 태도다. (이런 질문은) 선(善)을 행하려는 염려에서 생긴다. “우리는 약간의 돈을 가지고 어떻게 도와줄지 묻지만, 종종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정말 어딘가에 도움이 되는지 묻기도 합니다.” 교황은 “과부가 (내놓은) 두 닢의 동전처럼” 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관대함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또한 관대함은 매일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가 매일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더 관대해질 수 있을까? (...) 나는 어떻게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을까?’ 여러분 중에 ‘하지만 신부님, 아시다시피 저희는 겨우 한 달을 보냅니다’고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래도 동전 몇 개는 남았습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비록) 사소한 것이라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방 안을 둘러봅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구두를 갖고 있는가?’ 한 켤레, 두 켤레, 세 켤레, 네 켤레, 열 다섯 켤레, 스무 켤레 (...) 각자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 저는 구두 40켤레를 가지고 있던 몬시뇰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 만일, 여러분이 많은 구두를 갖고 있다면, 절반을 내어주십시오. 입지 않는 옷이나 일년에 한 번 입는 옷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는 것,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관대한 사람이 되는 방법입니다.”

소비주의 질환

교황은 항상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지출금액의 10퍼센트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물건을 사곤 했던 어떤 부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10분의 1”을, 그러니까 “십일조”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우리는 관대함을 통해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의 관대함입니다. 당장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이를 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 메시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어떻게 더 관대해질 수 있을까?’ 많은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 ‘맞습니다, 신부님. 물론 그렇지만 (...)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항상 두려움이 있습니다. (...)’ 하지만, 또 다른 질병이 있습니다. 오늘날, 관대함을 거스르는 질병입니다. 곧 소비주의(consumismo)라는 질병입니다.”

이 질병은 항상 무엇을 구매하는 것이다.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낼 때 “매 주말마다 쇼핑-관광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금요일 저녁 비행기로 사람들을 태워 약 10시간 비행한 뒤 어떤 나라에 가서 토요일과 주일을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보낸 다음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오늘날 소비주의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런 소비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비주의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구매하는 것이고, 삶의 엄격함(austerità)이 부족한 데서 나옵니다. 이 소비주의가 관대함의 원수입니다. 아울러 물질적인 관대함은, 곧 가난한 이들에게 ‘그들이 먹고 입을 수 있도록 이것을 내가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결과입니다. (관대함은) 마음을 넓혀주고 아량으로 이끕니다.”

관대함은 아량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포함되는 아량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교황은 “돈을 내어놓았던 그 부자들은 좋은 사람들”이라며 “그 늙은 과부는 성녀였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마무리하면서 “집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관대함의 여정을 걸어가라고 격려했다. 다시 말해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약간의 엄격함”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소비에 종속되게 만들며, “정신과 질환”인 소비주의라는 아주 위험한 악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교황은 “주님께 이러한 은총, 곧 우리 마음을 넓혀주고 우리를 아량(magnanimità)으로 이끌어주는 관대함(generosità)을 청하자”고 독려했다.

26 11월 20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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