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참된 일치는 예수님의 길”

(일치에 이르기 위한)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자 하시는 참된 일치이고, 다른 하나는 험담하고 단죄하며 우리를 분열시키는 거짓된 일치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17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중에 강조한 메시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7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중에 참된 일치를 위해 일하라고 권고하면서, 거짓된 일치는 험담하고 비난하며 결국에는 우리를 분열시킨다고 경고했다. 교황의 강론은 이날 전례 말씀에서 영감을 얻은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의 일치, 곧 두 가지 유형의 길에 초점을 맞췄다. 하나는 이날 복음(요한 17,20-26)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공유하며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고자 하는 참된 일치다. 이는 “구원의 일치”이고, “교회를 건설하는” 일치에 관한 것이며, 영원으로 나아가는 일치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 삶과 교회, 혹은 세상 안에서, 우리가 일치를 위해 일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위에 있습니다.”

거짓된 일치는 분열시킵니다

아울러 교황은 이날 제1독서(사도 22,30; 23,6-11)에서 보여준 것처럼 성 바오로 사도를 고발한 자들과 같은 “거짓된 일치”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처음에 바오로 사도를 고발하기 위해 하나가 됐다. 그러나 바오로는 “영리했기” 때문에, 곧 인간적 지혜와 성령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고 말하며, 그들 가운데 “분열의 돌”을 던졌다. 이 거짓된 일치의 한 부분은 사실상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과 이 모든 것을 다 인정하는 바리사이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렇게 그들 사이에 큰 논쟁이 벌어졌고, 바오로를 고발했던 회중은 둘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이러한 “일관성 없는” 거짓된 일치를 파괴할 수 있었다.

회중은 익명의 군중이 되었습니다

성 바오로 사도가 겪은 다른 핍박의 경우를 살펴보면, 회중은 자신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외쳐 댔으며, “지도자”들은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를 (그들에게) 제안했고 회중들은 그대로 따라했다.

이렇게 회중을 도구화시키는 것은 회중을 경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중을 익명의 군중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반복해서 지속되는 요소다. “이에 대해 숙고해봅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는 군중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라고 환호했습니다. 그런 다음, 똑같은 군중들이 성 금요일에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들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회중을 파괴력이 있는 익명의 군중으로 바꾸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방법, 단죄를 위한 험담

교황은, 한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안개가 짙은 것과 같은)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결국 (그 사람은 단죄되며) 일치가 파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방법으로 예수님, 바오로, 스테파노를 비롯한 모든 순교자들이 핍박을 당했다며, 이러한 방법은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민간 사회와 정치판에서도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쓰고 있다. “언론 매체들은 사람들과 지도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하고, 중상 모략과 명예 훼손을 하고, 그들의 이미지를 나쁘게 합니다.” 그리고 판결에 도달하여 “그들을 단죄하고, 결국에는 쿠테타에 성공합니다.” 이러한 박해는 원형극장(콜로세움)에서, 순교자들이 벌이는 맹수들 혹은 검투사들과의 싸움을 보기 위해 소리 지르는 군중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험담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교황은 “단죄하기 위해” (연결돼 있는) 사슬의 연결 고리가 항상 “거짓된 일치의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더 좁은 기준에서 보면, 똑같은 것이 우리 본당 공동체 안에서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두세사람이 모여 한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 그럴 때 그들은 한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거짓된 일치를 이룹니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그 한 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들은 그 한 사람을 비난하는 태도처럼 정신적으로 비난합니다. 그 일이 끝난 다음에는, 그들은 서로 분열되고, 그들 스스로 서로를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험담은 (인격을) 죽이고,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들의 ‘명예’를 없애기 때문에, 살인자의 태도입니다.”

진정한 일치의 길로 걸어 가십시오

“험담”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한 다음 (그분을) 죽이기 위해 예수님에게도 사용한 것이다.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일치로 우리를 부른 위대한 부르심을 생각합시다. 일치의 길로 나아가려고 단합하며 항상 노력하는 사람들이 걸어 가는 길로 우리도 가야합니다. 내용도 없는 거짓된 일치, 한걸음 더 나아가는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을 단죄하고, 우리의 것이 아닌 이익, 곧 분열을 일으키는 이 세상 주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거짓된 일치는 안 됩니다. 우리가 참된 일치의 길을 항상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17 5월 20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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