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피 추기경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모범을 따릅시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창욱
이탈리아 주교회의(CEI) 의장 마테오 마리아 주피(Matteo Maria Zuppi) 추기경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인 10월 4일 오전 아시시에서 미사를 거행하며 코로나19를 잊지 말자고 초대하는 한편, 전쟁의 파멸적인 결과를 지적했다. 이날 미사에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도 참례했다. 움브라교구장 도메니코 소렌티노(Domenico Sorrentino) 대주교,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전 교황 대리 아고스티노 발리니(Agostino Vallini) 추기경, 프란치스칸 가족의 총장들과 관구장들이 공동집전자로 함께했다. 아시시의 ‘가난뱅이(Poverello, 포베렐로)’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념하는 예식은 10월 3일 예식과 밤샘기도로 시작해 10월 4일 저녁기도를 바치면서 마무리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4일 교황 트윗 계정(@Pontifex)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자기 자신을 태양과 바다와 바람의 형제로 본 아시시의 프라치스코 성인은 세상 곳곳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며, 가난한 이, 버림받은 이, 병약한 이, 소외된 이, 보잘것없는 이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성인의 모범을 따릅시다!” 교황의 트윗 메시지는 주피 추기경의 강론을 요약한 것처럼 보인다.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추기경
주피 추기경은 과거와 현재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탈리아와 프란치스코 성인을 마음에 품으며 미사를 거행했다. 그는 성인이 “우리의 주보성인”이라며 “큰 고통과 우려로 점철된 이 시대에 우리가 여기서 이탈리아의 모든 교회와 함께 그리고 모든 이탈리아인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대통령과 함께하고 있다는 건 특별한 기쁨”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건설적인 이상을 보호하기 위해 확신에 찬 열정과 지혜로 봉사하시는 대통령님이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경험을 잊지 맙시다
주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성인은 복음을 듣고 단순히 복음을 실천했습니다.” 주피 추기경은 성인이 평화, 선, 모든 피조물과 창조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이끈다며, 이를 통해 성인이 “형제애”를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두려움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성인이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비롯해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있는 형제적이고 전쟁 없는 세상을 설계했다”며, 오늘날 “사랑의 힘으로 어려움을 바라보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주피 추기경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었던 기간을 생각하며, 지난 2020년 성금요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의 기도를 떠올렸다. “벌써 몇 주 째 저녁이 된 것 같습니다. 짙은 어둠이 우리의 광장과 거리, 도시를 뒤덮었습니다. (...) 우리는 두려우며 길을 잃었습니다.” 이어 주피 추기경은 그 경험을 잊지 말고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유훈”을 되새기자고 초대했다. 아울러 오늘 그들 가운데 몇몇을 기억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쓰라림과 절망을 낳았는지 깨달으며” 그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 성인의 등불 옆에 놓았다고 말했다.
밤을 비추는 등불과 오늘의 선택
하지만 그 “끔찍한 밤”에도 빛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으며 “더 큰 사랑을 반영하고 있었다”고 주피 추기경은 강조했다. “의료진들은 인류애의 작은 몸짓으로 이러한 등불을 밝혔습니다. 곧,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고, 손을 붙잡아주고, 확신을 주고, 묵묵히 쓰다듬거나 눈길을 건네는 몸짓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을 넘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역사의 교훈’을 빠르게 망각하지 않도록” 선택을 하고자 한다. 주피 추기경은 회칙 「Fratelli tutti」를 인용했다. “이처럼 큰 슬픔을 헛되지 않게 하고, 우리가 새로운 생활 방식을 향하여 도약하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든 장벽을 뛰어 넘어 모든 얼굴과 모든 손과 모든 목소리를 아우르는 인류 가족이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Fratelli tutti」, 35항).
이탈리아를 의탁합니다
주피 추기경은 성인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고통을 사랑으로, 괴로움의 쓴맛을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주피 추기경은 사랑이 “개인주의의 무겁고 견딜 수 없는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고 말했다. “우리가 함께해야 현재의 심각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곤경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도 이런 곤경을 극적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보성인의 전구에 이탈리아를 맡깁시다. 성인께서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공동의 집에 대한 책임과 정치적 애정을 지지해 주시어, 필요한 다양성 안에서 모두가 국익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국가 제도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그 어떤 계획도 실현될 수 없습니다.”
유럽은 공리공론에 빠지지 말고 평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야
주피 추기경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크든 작든, 비인간적이든 익명적이든, 불의를 낳고 숱한 빈곤을 초래하는 일종의 약탈인 공리공론의 논리를 물리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청했다. 미래의 열쇠는 가난한 이와 이주민, 젊은이와 노인, 환경 돌봄 등 모든 차원에서 “모든 이가 형제들”이라는 인식으로 사는 데 있다. 주피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슬픔에 찬 호소를 우리의 호소로 삼읍시다. 교황님은 전쟁 당사국(러시아·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해 대화의 길을 모색하고 정의로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이들에게 호소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우리 모두는 평화의 장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이탈리아 전역이 주보성인인 프란치스코 성인과 함께 등불의 빛을 밝히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등불이 우리의 유일한 방인 이 세상을 인간적이고 형제적인 세상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타렐라 대통령 “성 프란치스코의 예언적 힘”
미사 말미에 마타렐라 대통령이 이탈리아를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봉헌하는 전통적인 서원의 등불에 점화했다. 이어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총봉사자 카를로스 알베르토 트로바렐리 형제의 인사말 이후 이탈리아에 보내는 대통령 메시지를 낭독했다. 코로나19의 교훈과 전쟁이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인명과 이성을 소모하고, 세상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파멸로 치닫게 하는 위험을 초래하고, 죽음과 황폐를 가중시키는 전쟁 논리에 굴하지 맙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 정체성의 오래된 뿌리 중 하나입니다. 성인이 택한 삶의 예언적인 힘은 이탈리아, 유럽, 지중해, 세계의 내일을 위해 우리가 생생하게 느끼는 가치를 드높였습니다. 그 가치는 무엇보다 평화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마타렐라 대통령은 “성인의 모습, 생애, 증거는 신자들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있어 심오한 의미가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성인이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국회로부터 이탈리아의 주보성인으로 인정받았다며 “이날은 시민 축제의 날이자 평화의 날, 여러 종교와 문화에 속하는 이들 간의 대화와 형제애의 날”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탈리아에 대한 성인의 영적 메시지는 희망, 나눔의 여정입니다. 아울러 우리 어머니 대지에 대한 관심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 자원을 과도하게 소모할 때, 자연을 약탈할 때, 사람들 간의 불평등을 조성할 때, 미래 세대의 운명이 시들어갈 때, 우리는 평화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수리하고 다시 지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시대에 매우 시급한 일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코로나19, 여전히 책임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해 마타렐라 대통령은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다”며 “집단지성과 책임”이 모든 이에게 여전히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 및 의료기관과 그 종사자들의 귀중한 기여를 떠올리는 한편, 우리 곁을 떠난 많은 동료시민들과 그들의 가족도 생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수적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 실감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국제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황에 대한 감사인사
마타렐라 대통령은 교황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처음으로 택한 교황님은 ‘통합 생태론’을 설파하시며 해석과 책임의 핵심을 우리에게 제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전입니다. 곧, 환경적인 균형을 재구성하고, 만일의 사태가 제기하는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다시 한번 프란치스코 성인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성인의 선종 800주년을 떠올렸다. “우리는 성인을 우리 문명의 아버지 중 한 사람, 현실을 빚어내는 선각자, 우리가 충실하고자 하는 미래를 향한 여정을 제시할 수 있는 분으로 바라봅니다. 더 나은 미래! 이것이 오늘 아시시의 소망입니다. 이탈리아와 세계를 위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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