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예닝겐 신부, 복자품 올랐다... 교황 “훌륭한 사도 정신에 힘입어 모든 이에게 다가간 인물”
L’Osservatore Romano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17일 삼종기도 말미에 전날 독일 엘방엔에서 시복된 필립 예닝겐 신부(예수회)를 기억했다. “필립 예닝겐 신부님은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농촌 주민들 사이에서 사목활동을 수행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복음 선포자였던 그분은 훌륭한 사도 정신과 특별한 마리아 신심에 힘입어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사제의 모범과 전구로 우리가 형제들과 복음을 나누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빕니다.”
“선한 필립 신부님”
그를 만난 이들은 그의 열린 마음을 보고 “선한 필립 신부님”이라고 불렀다. 필립 신부는 그들에게 그리스도 성심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의 영적, 물질적 필요를 돕기 위해 활동했다. 룩셈부르크대교구장 겸 유럽연합주교회의위원회(COMECE) 의장 장-클로드 올러리슈(Jean-Claude Hollerich) 추기경(예수회)은 7월 16일 오전 독일 엘방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대리해 같은 예수회 형제 신부인 필립 신부의 시복미사를 주례했다. 올러리슈 추기경은 필립 신부가 하느님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봤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주라는 초대
필립 신부는 경건함으로 사람들을 만난 사제였다.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인 17세기에 살았던 이 예수회 사제는 과연 오늘날 세상에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그 답은 올러리슈 추기경이 설명했듯이 그의 실존 자체에 있다. 먼저 필립 신부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줬다. 올러리슈 추기경은 강론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독일에는 인구의 절반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세속화가 “수치상으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과 우리 생활방식에 스며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특히 주일에는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고 초대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삶을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울러 새 복자는 십자가에도 자리가 주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무거운 십자가, 질병과 죽음의 십자가, 투쟁과 전쟁의 십자가, 허무와 권태의 십자가, 두려움과 절망의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올러리슈 추기경은 “하지만 십자가에서 사랑과 구원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며 “사랑은 죽음의 어두운 십자가를 부활의 빛으로 비춘다”고 강조했다.
사랑의 시선
복자 필립 예닝겐 신부에게서 배워야 할 또 다른 요소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올러리슈 추기경은 강론에서 “사실 우리는 타인을 거부하고 우리의 사적인 의견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공유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거부하는 데에 막힘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때때로 “교회 내부의 분열로 이어진다”며 “이 작은 전쟁을 끝내자”고 말했다.
교황을 대리해 시복미사를 주례한 올러리슈 추기경은 이 예수회 선교사가 사랑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본 것처럼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초대했다. 이것이 “교회 선교 역량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교는 참되지 않다. 올러리슈 추기경은 이 사랑이 “우리의 헌신에서도 나타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피조물의 온전함을 위해 싸우고, 난민을 환대하고, 평화를 위해 일한다면 우리는 사회단체가 되는 게 아니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합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유대야말로 “우리를 이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는 선한 필립 신부가 살아낸” 것이다.
고되지만 기쁜 삶
올러리슈 추기경은 하느님을 믿느냐고 되물으면서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진정성을 숙고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본당의 “단단한 토대를 이루고 있는” 많은 신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올러리슈 추기경은 자신의 질문을 되풀이했다. “세례 받은 이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새 복자에게 있어 주님께 대한 믿음은 우월한 존재의 현존을 믿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깊은 것”이었다. “하느님은 필립 신부님의 삶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분의 신앙은 일상생활에서 하느님과의 깊은 유대가 특징이었습니다. 필립 신부님은 자신의 삶의 모든 것,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주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필립 신부는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을 거부당했지만, 독일 엘방엔 인근에서 “대중 선교사의 고된 삶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했다”고 올러리슈 추기경은 설명했다. “하느님을 만난 곳은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이었습니다.”
묵상
올러리슈 추기경은 필립 신부가 예수님의 제자였다며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과 복음서 읽기를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와 깊은 인격적 친교를 나눴다”고 말했다. “필립 신부님은 사명 안에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넘겨 드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 복자는 “구원 사업에 예수님의 동반자가 되게” 한다. 십자가는 “고문과 죽음의 도구일 뿐 아니라 구원의 공간”이다. 그러나 필립 신부에게 있어 십자가는 “단순히 신학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상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문제”였다. 올러리슈 추기경은 일상생활의 참 십자가가 “무겁고 고통스럽지만” 필립 신부가 “거기에서 행복을 찾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영신수련의 묵상에서 나타난 것처럼, 모든 이에 대한 삼위일체의 계시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모습은 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 안에서 복자 필립 신부는 “모든 이, 단연코 모든 이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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