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에서 피랍됐다가 풀려난 콜롬비아 출신 글로리아 나바에스 아르고티 수녀 말리에서 피랍됐다가 풀려난 콜롬비아 출신 글로리아 나바에스 아르고티 수녀 

글로리아 나바에스 수녀 “사막의 감옥 안에서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2017년 말리에서 지하디스트들에 의해 납치됐다가 지난 10월 9일 풀려난 콜롬비아인 수녀는 「바티칸 뉴스」를 통해 자신의 최근 소식을 전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이자 수녀로서 차별을 받았지만 납치범들을 존중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의 힘을 느꼈습니다. 저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Manuel Cubías / 번역 박수현

간수들이 몇 걸음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한 사막에서의 짧은 자유의 순간에 매일 시편을 암송하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확신하며 비록 가톨릭 수녀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음에도 납치범들을 존중하기. 2017년 2월 7일 말리에서 지하디스트들에 의해 피랍됐다가 지난 10월 9일 풀려난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글로리아 세실리아 나바에스 수녀는 4년8개월의 수감기간 동안 이 같은 일을 겪었다. 글로리아 수녀는 「바티칸 뉴스」를 통해 자신의 구금 경험과 자신에게 지속된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하 글로리아 수녀와의 일문일답:

수녀님을 위해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느끼셨나요?

“믿음은 항상 저를 지탱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저를 도우신다는 것과 온 교회와 저희 수녀회 자매들 그리고 온 세상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을 피랍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납치범들과의 관계는 존중의 관계였습니다. 그들 개개인을 위해 기도하고 제가 옳은 일에 순종해야 할 때는 순종했습니다. 그들과의 관계는 좋았습니다.”

그들은 수녀님을 어떻게 대했나요? 수도자, 외국인, 다른 문화권의 사람으로 대했나요?

“그들은 제가 수녀라는 이유로 저를 차별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였고 그들과 같은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항상 이슬람만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존중했지만, 그들은 가톨릭 신자이자 수녀라는 이유로 저를 거부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녀님은 목숨이 두렵지 않았나요?

“네,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저를 납치했을 때 저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믿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믿음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현존의 내적 힘을 느낀 특별한 순간이나 상징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특히 시편을 읊을 때, 사막을 조금 걸으며 창조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모래 산을 따라 걷는 낙타를 볼 때마다 말이죠. 매 순간 저는 하느님 안에서 크나큰 확신을 느꼈습니다.”

수감생활이 끝났다는 것을 언제 실감했나요?

“바마코에 도착해 대통령 관저로 가서 말리 대통령님과 문화종교부 장관님과 함께 제르보(Zerbo) 추기경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알았죠.”

당시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먼저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반복합니다. 우리 주님만큼 위대하신 분은 없다고요. 주님께서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저의 빛이시며 저의 구원이십니다.’ 저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리 당국, 이탈리아 정부와 정보기관, 그리고 저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도는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루도록 해 줍니다.”

선교사로서 수녀님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그 나라에서 계속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말리의 카랑가소에 있는 매우 큰 필요에 부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종종 출산 도중 사망한 산모의 아이들을 수용하는 보육원에 종사하며 그들의 문맹 퇴치와 자수 및 재봉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시장에서 소규모 사업체, 특히 여성을 위한 소액신용대출을 도와 그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비록 몇 달 동안 그곳에 있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활동이 종료되지 않고 여전히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소액신용대출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구의 관할 아래에서 지역 여성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5 10월 2021, 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