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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대한민국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선종

대한민국 서울의 전임 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4월 27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지난 2006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고 2012년까지 14년 동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대교구장을 역임했다. 정 추기경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선종했다. 그는 대한민국에 가톨릭 신자가 더 많아지고 사제들의 수가 더 증가하도록 전 생애 동안 주님께 기도를 바쳤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창욱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은 지난 1931년 12월 7일 서울에 위치한 수표동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난 4월 27일,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발명가를 꿈꾸며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 서울대학교 공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마칠 수 없었다. 이후 성신대학교(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해 지난 1961년 3월 18일 사제품을 받았다. 당시 한국 가톨릭 신자들은 인구의 1퍼센트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신자수가 10퍼센트로 성장하도록 기도했다. 이 수치는 2000년도에 이르러 달성됐다. 그는 중림동 본당의 보좌 신부로 임명됐으며, 이어 서울 성신고등학교의 교사와 부교장을 역임했다. 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 겸 상서국장에 임명됐고, 서울대교구 내 수많은 활동을 맡았다.

로마 유학과 귀국

그는 로마의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취득한 다음 귀국했다. 1970년 6월 25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돼 같은 해 10월 3일 주교로 서품됐다. 그는 사목표어로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를 택했다. 그가 주교로 서임됐을 때, 청주교구에는 6명의 방인 사제들과 20명의 메리놀 선교수도회 소속 사제들이 있었고, 그의 사목 관할권 안에는 22개의 본당이 있었다. 주교직무 수행 첫날부터 그는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청하며 기도했다. “이 교구에 100명의 사제들을 보내주십시오!” 28년 후 청주교구장 사목을 마쳤을 때, 교구사제 수는 106명이었다. 아울러 그는 1975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이하 CBCK) 상임위원, 주교위원회 위원, 전국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1983년부터 2007년까지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CBCK 의장을 맡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지난 1998년 4월 3일 그를 서울대교구장으로 택했고, 같은 해 6월 6일부로 그를 평양교구장 서리도 겸하도록 임명했다. 그는 1998년 봄 아시아 특별 주교 시노드에 참석했다.

2006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 의해 추기경 서임

그는 지난 2006년 3월 24일 추기경회의에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고, 로마 시내 보체아 지역에 위치한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성당이 명의본당으로 주어졌다. 정 추기경은 교황청 ‘성좌조직재무심의 추기경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수많은 외국 서적을 번역했으며, (특히) 그가 집필한 교회법 해설 시리즈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작업이었다. 2005년에는 ‘민족 해방의 영도자’ 모세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에서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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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4월 2021, 2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