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삶의 ‘카를로 아쿠티스’ 시복식 “복자는 타인 위해 주어진 선물”
Benedetta Capelli / 번역 이재협 신부
바람에 날리는 사랑스러운 곱슬머리, 옅게 드리운 미소, 평화로운 눈빛.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 교황 특사’ 아고스티노 발리니(Agostino Vallini) 추기경이 시복 선언문을 낭독하자마자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Carlo Acutis)의 이 같은 모습이 새겨진 걸개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 옆에는 복자의 심장 유해도 공개됐다. 복자의 심장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특히 그의 부모 안토니아와 안드레아의 가슴 속에서 뛰고 있다. 발리니 추기경은 특별히 복자의 부모와 인사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복자의 부모를 포옹하는 발리니 추기경의 몸짓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을 아들이 자유롭게 걸어가도록 봉헌한 부모에게 보내는 교회의 감사가 담겨있었다.
빛을 비추는 등대
10월 10일 토요일부터 교회에는 “빛을 비추는 등대”가 생겼다. 이 등대는 움브리아의 심장인 아시시에서 수천명의 사람을 주님께로 이끌었다. 복자 카를로는 신앙의 참된 여정에 대한 물음을 품고 있었고 하늘나라에 이르는 유일한 ‘고속도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단순함은 놀라웠다. 복자는 놀랍게도 어려서부터 확신에 가득 차 복음에 “네”라고 응답했다. 그의 짧은 생애를 통해 드러났고 그를 아는 모든 이 안에서 나온 그 응답은 놀라운 혁명이었다. 왜냐하면 한 번 빛의 비추임을 받으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 예수님
발리니 추기경은 시복식 강론을 통해 지난 2006년부터 급성백혈병을 앓았던 카를로의 삶을 기억했다. 이어 카를로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 역시 존재 자체로 특별하다면서, 이 가운데 소년 카를로의 특별함에 대해 말했다. 카를로는 인터넷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Christus Vivit)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터넷을 “신앙을 전하는 도구, 아름다운 가치를 소통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을 특징짓는 부분은 그의 친구이자 스승, 그리고 구원자 예수님을 향한 크나큰 사랑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있어 사람들을 향해 더 큰 사랑을 전하게 하고 선을 행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발리니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년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삶의 모범으로 여겨졌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카를로가 지닌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과 개인적이고 내밀하며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카를로에게 있어서 성체성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다
발리니 추기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불타오른 카를로가 무엇보다 삶의 모범을 통한 “복음 선포자”라고 강조했다. 이어 카를로는 “가정의 신성함”과 “낙태와 안락사를 거슬러 생명의 신성함”을 확고하게 수호하는 데서 오는 “오해와 장애물들 심지어는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믿는 것을 증거하고 타인을 예수님께로 이끌었다고 역설했다.
“카를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우정과 은총을 누리도록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따라서 카를로는 온갖 도구를 이용해 이 같은 영적 요구와 소통했다. 그는 인터넷이 “대화의 공간, 배움의 공간, 나눔의 공간, 상호존중의 공간”이기에, “(우리는) 인터넷의 노예가 되지 않고 온라인 따돌림(사이버 불링)을 거부하면서 책임 있게 사용돼야 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런 확신을 통해 카를로는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인 성체기적에 대한 설명, 성체신심, 아이들을 위한 교리 교육, 매일의 동반자인 묵주기도 등을 설명하는 누리집을 만들었다.
“기도와 사명은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영웅적 신앙을 특징짓는 두 가지 요소입니다. 복자는 짧은 생애를 통해 삶의 모든 순간, 특별히 더 어려운 시련의 순간에 자신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세태를 거슬러
카를로가 삶에서 겪어야 했던 시련은 병이었다. 하지만 그 병은 카를로가 자신의 고통을 “주님과 교황, 그리고 교회”에 봉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오늘 복자품에 오르는 카를로 아쿠티스는 온갖 종류의 타협을 거부하는 굳건함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 세태를 역행하더라도 구체적으로 복음을 사는 게 필수적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세태를 역행한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 홀로 방치된 노인들, 노숙자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걸 뜻한다. 이는 곧,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자의 빛나는 삶은 성찬례의 빵처럼 모든 이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히다
열다섯 살 소년은 어린이와 같이 확고한 마음이 있다면 성덕의 길을 걷는 게 가능하다고 삶으로 보여줬다. 발리니 추기경은 카를로가 덧없이 지나가는 성공에서 만족을 찾지 않고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해 들려주신 영원한 가치 안에서 찾을 수 있음을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성덕의 길이란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이웃들, 특히 가장 작은 이들을 섬기는 복음의 말씀을 걷는 길이다.
“롬바르디아의 아들이며 성 프란치스코의 땅인 아시시와 사랑에 빠진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복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그의 시복은 또래 친구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 시대의 한 소년이 그리스도께 사로잡혔음을 드러내는 강한 선포입니다. 복자는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고 그분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를 위해 빛을 비추는 등대가 됐습니다.”
(어린 복자의 생애는) 그가 먼저 걸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걸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삶에 온전히 잠기도록 하는 신앙의 증거다. 왜냐하면 오직 그 길에서 우리의 삶은 “희망과 빛으로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를 위한 식탁과 카를로 장학기금
아시시교구장 도메니코 소렌티노(Domenico Sorrentino) 대주교는 시복식을 마치며 복자 카를로가 교회에 선사한 선물에 감사를 전했다. 이 선물은 교회뿐 아니라 소년의 신앙 여정을 도운 모든 이와 시복을 위해 노력한 모든 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복자 카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황금으로 된 실이 그들을 묶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언제나 예수님과 일치하도록 마련된 카를로의 삶의 계획, 성체를 향한 그의 사랑, 동정 성모님을 향한 그의 신심, 가난한 이의 친구가 되어준 모습 등 이 모든 그의 삶은 그가 아시시 성인의 영성과 결합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카를로 복자는 우리를 복음에 따라 살도록 초대합니다.” 아울러 소렌티노 대주교는 특별한 두 가지 자선 행사가 계획돼 있다고 알렸다. 하나는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적 차원에서 형제애를 실천하는 “성 프란치스코와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국제 장학기금”이다. “자선행사는 정확히 일주일 전 이 은총의 장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인준하신 회칙 「Fratelli tutti」에 대한 작은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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