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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니 대주교 “밀라노 교회는 복자 바오로 6세를 기억합니다”

밀라노 교회 공동체는 지난 1954년부터 1963년 6월 21일까지 밀라노 교회를 이끌었던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을 애정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밀라노 대교구장 마리오 델피니(Mario Delpini) 대주교는 그 기간 동안의 중요한 몇몇 행적을 떠올렸다.

 

번역 이정숙

몬티니(Montini,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의 세속명)가 밀라노에서 보냈던 세월은 강렬했다. 두오모(주교좌성당)의 장엄한 입장은 확실히 그 경험의 상징적인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다. 10월 6일 토요일 WebDoc(웹 다큐멘터리)에서 밀라노 대교구장 마리오 델피니(Mario Delpini) 대주교는 그날을 회상했다. 그리고, 바티칸의 문서고에서 가져온 소중한 녹취본은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이 회상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 영상에서 브레시아 출신의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은 취재 기자처럼 지난 1955년 1월 6일 (밀라노 대교구장 착좌 당시를) 회상했다.

사목적 경험

당시 보도기사들은 몬티니가 약 90상자에 달하는 책을 갖고 (밀라노 대교구장 착좌) 이틀 전에 기차를 타고 도착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지성인 몬티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그가 근대화의 발전에 관한 (문제들에) 즉각적으로 했던 구체적인 답변들은 그 책들을 통해 탐독했던 것이었다. 그 구체성은 바로, 그가 30년 동안의 바티칸 근무 이후에 맡은 그의 첫 번째 사목적 경험의 시험대였던 그 거대한 교구의 많은 요구에 직면해서 (보여준) 구체성이었다.

경청과 행동

세속화의 과정과 강력한 이민의 경험을 이미 거친 최고의 산업도시에서, 몬티니 대주교는 ‘멀리 있는 이들’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지난 1957년에는 약 한 달 동안 실시됐던 중요한 경청의 활동인 ‘밀라노의 선교’를 시도했다. 이는 예전에 교구 관할지역에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이다. 아울러 그의 교구장 재임기간 중 123개의 새로운 교회들이 세워졌다. 공장에서 은행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든 노동 환경을 방문하면서 모든 노동생산 영역의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는 사제복을 입고 가난한 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위해 헌신했다.

백성의 교회

델피니 대주교는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에 대한 사랑, 특히 밀라노 대교구 사제들의 (애정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도 신자들은 그가 밀라노 대교구장 재임기간 동안 수집한 제안 (청원)들을 가지고, 그가 교황으로 즉위하여 마무리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여한 것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그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밀라노 대교구가 마련한 영상 가운데 추천된 이미지 중에는 몬티니가 840번째 사목방문에서 노새를 탄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지난 1958년 8월 10일 레코 현에 위치한 모르테로네(Morterone)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다.

 

06 10월 2018,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