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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사제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인 8월 14일은 아우슈비츠에 수감됐던 성인이 동료를 대신해 죽음을 자원한 뒤 나치에 의해 독극물 주사를 맞고 선종한 날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폴란드가 점령됐을 때 아우슈비츠는 유다인의 약 90%에 달하는 110만 명 이상의 남자, 여자, 어린이들이 독일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살해당했던 집중적인 대학살 수용소로 악명을 떨쳤다.

그런데 한 사람의 가톨릭 성직자가 이타적 복음의 사랑으로 나치라는 악에 대응함으로써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완전한 사랑을 살아낸 순교자가 됐다. 그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사제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희생자였던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다.

지난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당시 콜베 신부는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유다인 2000명을 포함한 폴란드 난민 3000명에게 그들의 수도원을 은신처로 제공했다. 나치는 1941년 해당 수도원을 폐쇄하고 콜베 신부와 네 명의 동료들을 아우슈비츠라는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시켰다. 그들은 거기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노역했다.

한 사람의 수감자가 수용소에서 탈출한 일이 벌어졌을 때, 나치는 탈출에 대한 경고로 열 명의 다른 수감자를 지목해 아사형(餓死刑)에 처하기로 했다. 죽을 운명에 처한 열 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체(Franciszek Gajowniczek)는 아내와 자녀들을 떠올리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콜베 신부는 더 이상 못보겠다며 모자를 벗고 조용히 앞으로 나선 뒤 지휘관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가톨릭 사제입니다. 그 사람 대신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저는 늙었습니다. 저 사람은 아내와 자녀들이 있습니다.” 콜베 신부는 아사형을 선고받은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반복했다. “저는 폴란드에서 온 가톨릭 사제입니다. 제가 저 사람을 대신해서 죽겠습니다. 저 사람은 아내와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졌다!

죄수번호 16670을 부여 받은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는 15일 넘게 고문을 겪다가 페롤 독극물 주사를 맞고 선종했다. 1941년 8월 14일 12시30분,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난 그는 사랑의 순교자가 됐다.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은 지난 1971년 10월 17일 콜베 신부를 시복했으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지난 1982년 10월 10일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14 8월 2018, 12:53